67. 여호와의 말씀이 응하는 길 - 시105:10~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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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여호와의 말씀이 응하는 길은 어떠한 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진리 하에서 똑똑히 배워야 할 것이다. 하나님은 왜 아브라함,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했느냐 하면 그들에게 언약하신 말씀대로 이루어 주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을 믿고 천신만고의 어려움이 와도 따라가는 신앙을 가진 자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이제 여호와의 말씀이 응하는 길은 무엇이냐 하는 데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1. 유리하는 길이다 (12~15)
(시105:10)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영한 언약이라
(시105:11) 이르시기를 내가 가나안 땅을 네게 주어 너희 기업의 지경이 되게 하리라 하셨도다
(시105:12) 때에 저희 인수가 적어 매우 영성하며 그 땅에 객이 되어
(시105:13) 이 족속에게서 저 족속에게로, 이 나라에서 다른 민족에게로 유리하였도다
(시105:14) 사람이 그들을 해하기를 용납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연고로 열왕을 꾸짖어
(시105:15) 이르시기를 나의 기름 부은 자를 만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상하지 말라 하셨도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세운 후에 그를 인도할 때 정처 없는 객지 생활로 유리하는 생활을 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것은 네가 나의 말을 순종하느냐, 아니하느냐 하는 것을 먼저 시험해 보는 인도였던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네 자손이 하늘의 별과 같이, 바다의 모래같이 많아지리라”고 언약을 하시고 그를 인도할 때 억울한 고생을 하게 하였던 것이다. 그는 팔레스타인 성지를 얻는 길을 정처 없이 고향을 떠나서 가던 중 모리아 상수리나무 아래서 홀연히 하나님께서 나타나 성지를 너에게 준다는 약속을 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거기에서 복을 누린 것이 아니고 흉년을 만나 애굽으로 갔던 것이다. 불행스럽게도 애굽에 가서 아내까지 잃어버리는 비참한 광경에 처했던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절망 중에 있는 아브라함에게 표적을 나타내어 애굽 왕 바로의 손에서 사라를 빼앗아 준 일도 있게 되었다. 그때 그는 분명히 하나님은 자기와 같이한다는 것을 깨닫고 성지를 떠나 외국으로 가도 그는 하나님이 어디서나 같이한다는 것을 믿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인도란 인간이 볼 때 불행스러운 일 같으나 하나님은 나를 도우신다는 것을 굳게 믿도록 하는 일도 있는 것이다.
2. 극도로 원통한 일도 당하게 된다 (16~17)
(시105:16) 그가 또 기근을 불러 그 땅에 임하게 하여 그 의뢰하는 양식을 다 끊으셨도다
(시105:17) 한 사람을 앞서 보내셨음이여 요셉이 종으로 팔렸도다
아브라함은 나이 백 세에 이삭을 낳아서 하나님께 바치게 된 일이 있게 된 것도 인간이 볼 때는 너무나 원통하고 억울한 일같이 보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거기에서 아브라함은 큰 축복을 받았던 것이다.
이삭이 야곱을 낳고 야곱이 열두 아들을 낳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언약한 말씀이 응하기 위하여 요셉을 억울하게 애굽으로 팔리게 했던 것이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서 네 민족이 반드시 이방의 객이 되어 430년 만에 돌아오므로 이 성지에서 복을 누린다는 예언이 응하기 위한 과정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억울한 시기와 쫓겨남을 당해도 가는 길은 하나님 말씀이 응하는 길이라는 것을 깨닫는 자는 심히 적을 것이다.
3. 억울한 누명을 쓰는 일도 있었다 (18)
(시105:18) 그 발이 착고에 상하며 그 몸이 쇠사슬에 매였으니
(시105:19)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 말씀이 저를 단련하였도다
요셉은 억울하게 보디발의 아내에게 누명을 쓰고 고랑을 차고 사슬에 매여 옥중 생활의 슬픈 생활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러한 억울한 사정을 당하지 않고는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니 옥중 생활이 있음으로 그의 길이 열려지는 숨은 뜻이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인도하는 길은 실패 같고 죽는 길 같으나 여기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일이 되는 것이다.
4. 홀연히 해방을 받음 (20)
(시105:20) 왕이 사람을 보내어 저를 방석함이여 열방의 통치자가 저로 자유케 하였도다
하나님의 인도하는 길은 죽는 길 같으나 오히려 더 유리한 길이 열려지는 일도 있는 것이다. 요셉이 옥중에 들어갔다가 기적적으로 해방을 받는 일은 열방의 통치자가 되는 자유의 길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는 길은 인간의 어떤 연구, 예산, 기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기대 밖에 놀라운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모르는 인생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는 양심이 맑은 자라면 하나님은 책임지고 말씀이 응하도록 해 주시는 것이다.
5. 무서운 재앙도 이루어지는 일이다 (21~22)
(시105:21) 저로 그 집의 주관자를 삼아 그 모든 소유를 관리케 하고
(시105:22) 임의로 백관을 제어하며 지혜로 장로들을 교훈하게 하였도다
일곱 해 동안 곡식을 하나도 거두지 못하는 흉년이 온 것은 언약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과정이었다. 이러한 비참한 재앙이 없었던들 야곱의 12지파는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았기 때문에 이방의 객이 되게 하기 위하여 무서운 재앙이 왔던 것이다.
6. 번성하게 되는 일 (23~24)
(시105:23) 이에 이스라엘이 애굽에 들어감이여 야곱이 함 땅에 객이 되었도다
(시105:24) 여호와께서 그 백성을 크게 번성케 하사 그들의 대적보다 강하게 하셨으며
(시105:25) 또 저희 마음을 변하여 그 백성을 미워하게 하시며 그 종들에게 교활히 행하게 하셨도다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는 과정은 뜻밖에 번성하고 갑자기 강해지는 일도 있다. 이들은 굶어 죽는 기근이 무서워서 얻어먹는 사람의 하나로 갔지만 큰 축복을 받아 70여 명의 이스라엘 백성이 60만 명이란 대중이 되었던 것이다.
우리의 흥망성쇠가 전부 하나님의 말씀에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결 론
우리의 신앙 정로라는 것은 무엇이든지 덮어놓고 잘된다고만 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면 양을 인도하는 목자가 양을 인도할 때 가는 길이 돌밭 또는 가시밭, 높은 언덕과 구덩이를 통과하는 것과 같이 주님의 인도하는 길은 요셉이 애굽으로 내려간 일까지 보더라도 넉넉히 험한 길이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우리는 예지, 예정이 계신 하나님의 인도를 따르는 길에서 무슨 일을 당하든지 원망, 낙심, 공포가 있다면 아브라함의 신앙은 아닐 것이다. 신앙의 완전한 체험이란 어떤 기사이적이 아니고 실천 생활에서 말씀이 이루어지는 증거가 나타나는 것이니, 이것을 아브라함의 신앙 노선이라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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