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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주께서 사랑하는 자에게 요구하는 일 - 계3:14~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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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  론


  주님은 역사하실 때 사랑하는 자에게 대하여 모든 일을 진행하시되 사랑의 법만을 쓰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은 사랑인 동시에 징계를 나리는 것은 특히 사랑하는 자에게 요구하는 바를 들어 달라는 것이다.

  주님은 요구 없이 덮어놓고 징계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만일 어떤 부모가 자식을 책망할 때 무엇을 요구하는 것이 없이 공연히 성이 나서 책망한다면 오히려 책망을 받는 자녀에게 큰 저주가 될 것이다. 그러나 부모가 자식을 책망하고 징계할 때 무엇을 요구하는 안타까운 심정이 있어서 자식을 책망한다는 것은 큰 축복이 될 것이다.

  이제 주님께서 사랑하는 자를 향하여 징계하시면서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는 것을 본 성경에서 알 수 있다.



  1. 열심을 내 달라는 것 (19)


(계3: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계3: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계3: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계3: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계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3: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이것은 주고 싶은 주님의 사랑에 불타는 심정에서 안타까워하는 말이다. 하나님의 법은 열심을 내는 자에게만 준다는 것이 은혜를 주는 법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열심을 안 내는 게으른 자에게는 징계를 하는 것이요, 열심을 내야만 좋은 것을 준다는 것이다.

  어떤 신자가 열심이 없이 잠을 잔다면 그대로 은혜를 주시는 주님은 아니다. 열심이 나도록 때리는 것이다. 기쁜 일이 있을 때 열심을 내고 괴로운 일을 당할 때는 열심이 없으니, 주님의 요구는 괴로운 일에 열심을 내는 자를 원하신다는 것이다. 즉 징계가 올 때 열심을 내면 영적 향상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부모가 자식을 책망할 때 전보다 더 열심히 일한다면 부모는 만족한 마음으로 더 기뻐할 것이다.



  2. 문을 열어 달라는 것이다 (20)


(계3:20)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주님께서는 마음 문을 열고 있는 사람에게는 얼마든지 은혜를 주는 것이로되 마음 문을 닫는 사람에게는 은혜를 줄 수 없는 것이다. 누구든지 마음 문을 열고 주님을 바로 믿는 사람은 정상적인 은혜를 계속 받게 될 것이다. 마음을 연다는 것은 항상 사모하는 마음을 가르친 것이다. 즉 항상 자기 부족을 깨닫는 심정에서 좀 더 은혜를 받아야 되겠다는 마음이 생기는 것을 말한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재촉하는 것은 기도다. 혹 마음을 닫고 기도를 아니하여도 괴로움이 없다면 이 사람은 주님이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다. 문을 두드린다는 것은 주님이 항상 마음을 재촉한다는 뜻을 가르친 것이다. 성령이 내게 함께하는 증거는 항상 듣고 마음을 열고 먹는 일이다. 누구든지 듣고 먹는 자는 완전한 그리스도와 같은 지위를 소유하게 된다. 이것이 신앙 향상의 큰 요소가 된다.



  3. 보좌에 함께 앉기를 요구한다 (21)


(계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계3: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자가 당신과 같이 보좌에 앉기까지 재촉하신다. 이 보좌라는 것은 왕권을 말한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사랑하는 종들을 남보다 더 징계를 하고 두드려서 재촉하는 것은 최대의 목적인 왕국의 보좌를 주겠다는 사랑의 요구이다. 이러한 사랑의 요구는 주님밖에 가진 자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요구되기 때문에 이기는 자를 만들기 위해서 열심을 내라, 문을 열라, 함께 먹자, 이와 같이 요구하는 것이다.



  결  론


  기독교 신앙이라는 것은 사람이 먼저 구하니까 준다는 것이 아니요, 주님께서 먼저 사랑하는 자를 향하여 요구하는 바를 믿고 순종하는 것을 기독교 신앙이라 하는 것이다.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은 복음과 신앙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주고 싶은 사랑 속에 요구하는 심정을 만족하게 들어 준다면 보좌에 앉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씀은 나의 요구를 들어 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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