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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22. 택한 자를 찾는 주님의 심정 - 요4:1~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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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서  론 


  우리가 그리스도를 신앙하는 것은 그의 외형적 인격이나 표현적 이적이나 모범적인 생활을 보고 믿는 것은 아니다. 그의 심정이 어떻다는 것을 먼저 아는 것이 신앙의 요소가 될 것이다.

  이제 주님의 심정이 어떻다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는 것이다. 



  1. 겸손한 심정 (1~9)


(요4:1) 예수의 제자를 삼고 세례를 주는 것이 요한보다 많다 하는 말을 바리새인들이 들은 줄을 주께서 아신지라

(요4:2) (예수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 것이 아니요 제자들이 준 것이라)

(요4:3)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쌔

(요4:4)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요4: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요4: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시쯤 되었더라

(요4:7)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요4:8) 이는 제자들이 먹을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요4:9)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인간이 겸손한 사람이 없지는 않지만 주님같이 겸손한 자는 하나도 없다. 하나님의 아들이 음란한 여자를 찾아가는 일, 또는 거룩한 손을 내밀어 더러운 손에서 주는 물을 요구하는 일, 감히 상대할 수 없는 여자에게 먼저 가까이하여 말씀을 요청하는 일, 또는 그를 대하여 존경하는 태도를 가진 일, 이것이 주님의 겸손이다.



  2. 영생의 물을 주고 싶은 심정 (13~14)


(요4:1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요4:11)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 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요4: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으니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요4: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요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요4:15) 여자가 가로되 주여 이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주님은 죄를 보는 것보다 그 중심을 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영생이란 것은 값없이 주는 것이니 차별을 둘 수 없고 택한 자라면 주고 싶어 하는 심정을 가진 것이다. 인간은 요구하는 것이 물질의 것을 요구하나 주님은 그 요구 외에 더 좋은 영생의 물을 주고 싶어 하는 것이다.



  3. 인격을 아끼는 심정 (17~18)


(요4:16)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요4:17)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는 남편이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남편이 없다 하는 말이 옳도다

(요4:18) 네가 남편 다섯이 있었으나 지금 있는 자는 네 남편이 아니니 네 말이 참되도다


  주님께서는 사람을 대할 때에 아버지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을 어린아이까지라도 대우를 했던 것이다. 심지어 자기 죄를 가리워 보려는 이 여자에게도 그 인격을 아껴서 자진적으로 깨닫도록 말씀을 했던 것이다. 만일 억압적인 탄압으로 죄를 깨우쳐 준다는 것은 주님의 심정은 아니다. 양심에 거리낀 죄를 지은 자를 그 양심에 자유를 주어서 양심이 움직이는 데서부터 깨닫게 하는 것이 아끼는 심정이다.



  4. 알려 주고자 하는 심정 (21~26)


(요4:19)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요4: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요4:2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요4: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요4: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요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찌니라

(요4:25)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요4: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 하시니라


  주님은 모르는 사람을 어떻게 하든지 알려 주는 것으로써 그를 인도하는 것이 주님의 심정이다. 억지로 나를 따르라는 것은 절대로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비천한 여자에게라도 자기의 자체를 알려 주었던 것이다.



  5. 불타는 심정 (31~34)


(요4:27) 이 때에 제자들이 돌아와서 예수께서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이상히 여겼으나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저와 말씀하시니이까 묻는 이가 없더라

(요4: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요4:29)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요4:30)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요4: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가로되 랍비여 잡수소서

(요4:32)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요4:33)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대

(요4: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주님은 한 마리 양을 찾는 선한 목자의 심정이니 사마리아의 여자 하나를 찾고도 “이것이 나의 양식이라”고 말씀했던 것이다.



  6. 바빠하시는 심정 (35)


(요4:35) 너희가 넉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요4:36)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니라

(요4:37) 그런즉 한 사람이 심고 다른 사람이 거둔다 하는 말이 옳도다

(요4:38) 내가 너희로 노력지 아니한 것을 거두러 보내었노니 다른 사람들은 노력하였고 너희는 그들의 노력한 것에 참예하였느니라


  주님은 세상에 계셔서 잠시도 쉬지 않는 안타까운 심정 속에서 최고의 노력을 다했던 것이다. 예를 들면 추수기에 추수꾼의 심정을 가지고 말했던 것이다. 알곡을 아끼는 추수꾼의 심정은 바빠하는 심정이다.



  결  론


  만일 주님께서 이러한 심정이 없는 분이라면 우리와 주님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양심과 하나님을 상대할 때에 사마리아 여인의 생활보다 나은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와 같은 심정을 가진 예수님을 따를 자라면 이와 같은 심정을 우리도 가져야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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