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7. 아름다운 소식을 전할 자의 새 힘 - 사40:9, 27~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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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하나님은 아름다운 새 시대를 이루기 위하여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것이니 이것은 종말에 살아서 새 시대로 들어가는 주의 백성들이 들어야 될 소식이요, 그때 종들이 전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오신 것을 전하는 소식은 ‘기쁜 소식’이라고 전했던 것이다(눅2:10). 그러므로 종말에 아름다운 새 시대를 이루는 소식은 그리스도가 온다는 소식을 들은 자들인 시온의 아들딸에게 전하는 소식이다.
다시 말하면 기쁜 소식은 소망 없는 인간들에게 죄를 사함 받고 하나님께로 다시 나아올 수 있는 소식이라면, 아름다운 소식은 하나님의 자녀가 살아서 재앙을 받지 않고 아름다운 새 시대의 아름다운 생활, 아름다운 영광을 새 시대에서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40:1~2은 ‘죄 사함을 입었느니라’ 하는 소식이요, 9절은 ‘아름다운 소식’이라고 말했다.
세밀히 말하자면 사형 받을 죄인을 놓아주는 일이 속죄의 회개 운동이라면, 아름다운 소식은 축복받은 사람이 눈물과 죽음과 전쟁과 환난과 고통이 없는 시대를 얻는 것이다. 사람을 두고 말한다면 은혜시대의 소식은 병을 고치는 소식이라면, 말세의 소식은 건강한 사람이 살아서 자유롭게 활동하면서 일할 수 있는 생활이 온다는 것으로 말할 수 있다.
1. 높은 산으로 올라가므로 새 힘을 얻음 (9)
(사40:9) 아름다운 소식을 시온에 전하는 자여 너는 높은 산에 오르라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두려워 말고 소리를 높여 유다의 성읍들에 이르기를 너희 하나님을 보라 하라
이 ‘높은 산’이라는 것은 시련의 고개를 말한 것이다. 높은 산에 올라가는 사람은 피로를 느끼고 힘을 다하여야만 되는 것같이 이러한 영계에 올라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이 산은 어떤 유형적인 이 땅에 있는 산이라고도 볼 수 있는 동시에 영적으로는 올라가는 산이라고도 볼 수 있다.
세밀히 말하자면, 말세의 대표적인 하나님의 종이 어느 산을 중심하여 그 산에서 영계가 올라가서 힘을 얻고 소리를 높여 복음의 나팔을 불 것을 가르쳤다고 볼 수 있다. 왜냐하면 본 장의 3절에 “외치는 자의 소리여, 가로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는 말과 같이 세례 요한이 광야에서 외친 것을 본다면 종말의 역사를 전하는 것도 유형적인 실지 산이 될 것이다.
이 산은 어느 산인가 그 방향만은 알 수 있다. 유대 광야는 아시아의 서해 옆이라면 종말의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산은 아시아 동해 옆이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이사야 41장에 동방에서 사람이 나온다고 2절에 말했고, 9절에 동방 땅끝이라 했고, 25절에는 해 돋는 곳에서라고 하였다. 이것을 보면 방향은 알 수 있다. 동방 땅끝에서 어느 산을 중심하여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가 완전 무장을 갖추고 나올 것은 사실이다. 그러므로 9절은 종말의 사명자는 산을 중심해서 나온다는 위치를 말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2. 새 힘을 얻어야 할 필요성 (10~11)
(사40:10) 보라 주 여호와께서 장차 강한 자로 임하실 것이요 친히 그 팔로 다스리실 것이라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으며
(사40:11) 그는 목자 같이 양무리를 먹이시며 어린 양을 그 팔로 모아 품에 안으시며 젖먹이는 암컷들은 온순히 인도하시리로다
이때는 시대가 다른 때이다. 강한 심판이 나리는 보응이 있는 때니, 죄인을 부를 때와는 달라서 새 힘을 얻어야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느 민족이고 회개하고 돌아오는 그때는 온유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을 훼방하고 대적해도 용서해 주는 때다. 그러나 심판하러 오시는 역사는 강하고 두려운 주님으로 오시는 때이니, 새로운 힘을 하나님께 받은 자 외에는 주님 오시는 그날에 설 자는 없을 것이다. 새 힘을 얻어 전하는 자도 있고, 그때 특별한 보호를 받는 자도 있을 것이다.
3. 새 힘을 얻을 조건 (27)
(사40:27) 야곱아 네가 어찌하여 말하며 이스라엘아 네가 어찌하여 이르기를 내 사정은 여호와께 숨겨졌으며 원통한 것은 내 하나님에게서 수리하심을 받지 못한다 하느냐
이 조건은 억울한 사정을, 하나님만 아는 원통한 일을 당하기 때문에 새 힘을 준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보증적인 역사가 아니고는 안 될 사정을 당한다는 것이다. 사람에게는 멸시를 당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러므로 슥3:2에 그슬린 나무라 했고, 오바댜 2절에 크게 멸시를 당한다고 했다. 이것은 하나님이 특히 시련을 주되 인간들에게 짓밟히게 만드는 억울한 시련을 말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할 이유는 무엇인가 하면 권세의 새 힘을 줄 자니 억울한 사정을 당하게 만든 후에야 주기 때문이다.
4. 새 힘을 얻는 방법 (28~31)
(사40:28) 너는 알지 못하였느냐 듣지 못하였느냐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 땅 끝까지 창조하신 자는 피곤치 아니하시며 곤비치 아니하시며 명철이 한이 없으시며
(사40:29)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사40:30)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자빠지되
(사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 힘을 주시는 하나님은 나만 바라보면 무조건 강권으로 주신다는 방법이다. 사람도 물질도 바라보지 말고 너는 낙심 말고, 원망 말고, 두려워 말고 나를 바라보라는 하나님의 음성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종을 억울함을 당하도록 시련시켰으니 책임지고 새 힘을 주어서 들어 쓰시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방법이 아니고 하나님의 방법이며 종말적인 완전 역사다.
결 론
새 힘을 얻은 자의 열매는 완전한 인격을 소유하는 동시에, 초인간적인 인격을 가졌으니 열왕을 굴복시킨다. 또는 세계 민족들의 힘을 새롭게 만드는 인격이다(사41:1~2). 원수를 회삼물같이 짓밟는다(사41:25). 이 힘을 받은 종을 통하여 새 시대를 이룬다(사41:17~20). 이것이 기독교 종말의 끝을 맺는 역사라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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