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2. 백마의 2차 승리와 천년시대 - 계6:1~2, 19:11~16, 20: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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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하나님의 역사라는 것은 싸움이 없는 역사가 아니고, 싸움이 있으며 승리가 있으므로 안식의 시대가 온다는 것이 성서의 원리가 되는 것이다. 인류 역사는 인류 타락이 있고 싸움이라는 것은 가인과 아벨에서부터 시작이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은 어찌하여 싸움이 있게 했는가 하는 진리부터 알아야 할 것이다. 이것은 싸움이 있음으로써 왕권을 가질 자격을 이루는 요소이기 때문이다. 싸움이 없는 승리가 있을 수 없고, 승리 없는 왕국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은 비극을 가져오는 현실을 이룬 것은, 의의 세력이 승리를 보지 못하고 악의 세력이 승리를 이룬 열매이다. 다시 말하자면, 아담이 싸움에 짐으로써 이루어진 사망은 금일에 전 세계를 흑암으로 떨어뜨리고 비참을 가져오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싸움에 승리를 볼 자는 백마를 탄 자라는 것을 보여 준 것이다.
계시록은 봉함한 책을 열어 놓을 때부터 세상의 될 일을 보여 준 것이 계시록이다. 인류 역사의 시대 시대의 되어진 일도 안팎에 가득히 기록한 책의 뜻대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계시록은 목적한 것이다. 둘째 아담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승리를 이루게 되는 것은 신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와서 승리한 것이다. 이것은 흰말을 탈 수 있는 군대를 이루는 공로가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요16:33에 말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면 첫째 아담이 마귀와의 싸움에 지므로 사망이 왕 노릇 했고, 둘째 아담 예수가 십자가에서 승리하므로 의의 왕국을 이루게 되었다. 여기에 백마 탄 자라는 것은 십자가의 피로 성결을 이룬 성도의 무리를 가리킨 것이다.
이제 백마 탄 자가 어떻게 되어서 두 번째 승리하게 되느냐 하는 것을 본 성경에서 말한다.
1. 승리 (6:1~2)
(계6:1) 내가 보매 어린 양이 일곱 인 중에 하나를 떼시는 그 때에 내가 들으니 네 생물 중에 하나가 우뢰소리 같이 말하되 오라 하기로
(계6:2) 내가 이에 보니 흰 말이 있는데 그 탄 자가 활을 가졌고 면류관을 받고 나가서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더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승리는 잃었던 백성을 찾는 일에 승리를 보게 된다(계5:9). 하나님은 인간을 왜 잃었느냐 하는 것은 죗값이다. 죗값은 사망이니 사망이 왕 노릇 하는 권세 아래 인류를 빼앗긴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도가 세계를 정복하는 일이 첫째 승리가 되는 것이다. 누구든지 십자가의 피를 믿으면 무조건 죄악의 권세에서 해방을 준다는 싸움이다. 그러므로 기독교 역사의 수많은 종들이 이 해방의 운동을 위하여 피를 흘리며 싸웠던 것이다. 즉 우상적인 마귀의 종교가 지배하고 있는 정권과 교권을 때려 부수며 들어간 싸움이 기독교의 자유를 부르짖는 해방 운동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흑암에서 빛으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놓는 역사이다. 이것은 그리스도가 승리의 부활을 이룬 몸으로서 승천하여 역사하는 활동이다. 아무리 기독교를 반대하던 사람도 회개시키어 복음을 위하여 싸우도록 만드는 혁명적인 큰 역사는 기독교를 통하여 세계를 침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하늘과 땅의 권세를 받았으므로 승리를 이룬 것이다(마28:18~20). 승천하신 주께서는 권세를 받고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라는 말씀이 필연코 이루어진 승리를 본 것이 금일의 세계적인 기독교 문명이라는 것이다.
2. 두 번째 승리 (19:11~16)
(계19:11)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계19:12)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계19:13)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계19:14)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
(계19:15) 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또 친히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맹렬한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겠고
(계19:16) 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계20:1) 또 내가 보매 천사가 무저갱 열쇠와 큰 쇠사슬을 그 손에 가지고 하늘로서 내려와서
(계20:2) 용을 잡으니 곧 옛 뱀이요 마귀요 사단이라 잡아 일천년 동안 결박하여
(계20:3) 무저갱에 던져 잠그고 그 위에 인봉하여 천년이 차도록 다시는 만국을 미혹하지 못하게 하였다가 그 후에는 반드시 잠간 놓이리라
첫째 인을 뗄 때 두 번째 이기려고 한다 하는 말이 시작되었고, 계19:11 이하를 보면 완전히 이기었다는 것이 있고, 계20:1 이하를 보면 천년왕국이 온다는 것이다. 그러면 2차 승리는 어떻게 되어서 승리하게 되느냐를 알려면 계시록을 똑똑히 보아야 할 것이다.
금일까지는 계시록이 하등 필요가 없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즉 이것은 해방 운동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계시록은 승리해야만 된다는 무서운 전쟁이 다시 일어날 것을 말했다. 1차에는 그리스도가 승리한 십자가의 피로써 해방적인 운동이었으나, 2차에는 해방 받은 하나님의 자녀가 싸워서 이겨야 할 무서운 환난이 온다는 것이다. 금일까지는 하나님의 자녀를 마귀의 권세에서 해방하여 등록시키는 일이었으나, 계시록은 이미 등록된 자녀들이 싸워야 된다는 것이다(계5:10).
이때는 붉은 말이 허락을 받고 나온다. 2차 승리는 붉은 말과 싸워서 이겨야 된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므로 계19:19을 보면 백마 탄 군대가 붉은 짐승의 군대와 싸움을 마치는 광경이 보여졌다. 짐승의 군대는 분명히 용에게 권세를 받았다고 계13:4에 가르쳤고, 거짓선지는 붉은 짐승에게 권세를 받았다고 12절에 말했다. 그러면 백말 탄 군대의 대적은 붉은 용과 짐승의 군대와 거짓선지, 이것이 싸움의 대상자가 된다.
그러면 그리스도는 십자가상에서 혼자 승리를 보므로 세계적인 해방을 일으키는 열매를 가져왔으나, 두 번째 싸움은 백마 탄 자의 입에서 예리한 칼이 나오는데 이것으로써 싸운다고 말했다(계19:21). 이 검이라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다. 계시록에 내가 다시 올 때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계22:6에 말씀하셨으니 말씀으로 승리한 자라야 다시 오시는 주님을 살아서 맞이한다는 것이다.
세밀히 말하자면, 죽음을 맛보지 않고 들림 받는 종은 붉은 세력과 싸워서 이겨야만 들림 받는다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역사하실 것이니 말씀을 바로 믿고 지키는 자는 이기도록 하나님께서 권세를 준다는 것이다(계2:26, 11:3). 이 권세는 그리스도와 동등한 권세다. 주님은 이 권세를 왜 맡기느냐 하면 붉은 세력을 때려 승리하라는 허락을 맡기는 것이다. 재앙으로 이를 칠 수 있는 권세를 맡기고 붉은 군대를 쳐서 없이할 권세를 맡기는 것이다(슥9:13~15).
누구든지 계시록의 진리를 바로 나가서 전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권세를 줌으로써 이기는 것이니, 이 권세를 받는 자 외에는 다 붉은 세력에 먹힘을 당한다는 것이다. 이 권세라는 것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권세이니, 그리스도께서 말하는 대로 되는 권세를 하나님께 받았고 그리스도는 종말의 백마 탄 군대에게 이 권세를 맡기는 것과 같다.
예를 들면 대장이 싸우는 군대에게 마음대로 쳐 죽이라는 권세를 동등하게 맡기는 것과 같다. 그러면 이 권세는 만왕의 왕의 권세니 당할 자가 없다. 즉 이때는 살인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죄인을 부르는 시대의 종들은 원수에게 죽으면서도 불평이 없어야 했지만, 계시록의 예언의 말씀을 가지고 싸우는 종들은 죽이라는 권세를 받았기 때문에 재앙으로 땅을 칠 수가 있다. 모세에게도, 엘리야에게도 죽이는 권세를 맡겼던 것이다.
이렇게 되므로 교회는 양대 진영으로 갈라지게 된다. 권세 받은 종은 승리하게 되고, 짐승의 권세를 의지하고 타협하던 종은 용서 없이 백마 탄 군대에게 죽게 된다(계19:20).
결 론
천년왕국이란 마귀가 없고, 죄악이 없고, 재앙이 없고, 싸움이 없고, 사망과 질병과 고통이 없는 평화 왕국이 온다. 왜냐하면 마귀를 없애고 그 앞잡이 짐승의 군대와 거짓선지를 다 없애고 보니 필연적인 평화 왕국이 온다. 다시 말하면 첫 번 역사는 원수를 사랑해서 원수라도 회개하기를 기다리는 역사요, 두 번째 역사는 원수를 갚는 역사이다. 이날까지 억울하게 원수에게 박해를 받고 피 흘리던 기독교의 원통한 사정을 종말에 권세 받은 종들이 원한을 풀어 주는 것으로 끝을 맺는 것이다. 그러므로 환난 가운데 이길 수 있는 권세 받은 종은 왕권을 받고, 환난 가운데 권세 받은 종이 전하던 예언의 말씀을 믿고 피난한 자는 백성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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