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 사명자의 시련과 가정 문제 - 요7:1~7, 행1:12~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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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시련과 가정 난제는 결부된다는 것과 큰 사명자의 시련은 가정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예수님도 가정에서 쓴 시련을 통과한 것은 우리는 깊이 생각할 문제다. 30년간 가정의 생활 문제를 위하여 목수의 노동 생활도 시련이겠지만 세계 민족을 살리는 복음 운동을 시작할 때 가정 단합이 되지 않고 동생들까지도 비웃고 믿지를 않았다는 것은 분명히 요7:4~5에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선지자가 고향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말씀을 잊을 수가 없다. 주님께서도 나사렛 동리 회당에서 축출을 받을 적에 이 말씀을 했던 것이다(눅4:24). 시련이라는 과정에는 하나님과 그 사명자만이 비밀이 연락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도 친척도 부모도 그 사정을 모르게 되는 것이다.
1. 시련 시의 가정 문제 (요7:3~7)
(요7:1) 이 후에 예수께서 갈릴리에서 다니시고 유대에서 다니려 아니하심은 유대인들이 죽이려 함이러라
(요7:2) 유대인의 명절인 초막절이 가까운지라
(요7:3) 그 형제들이 예수께 이르되 당신의 행하는 일을 제자들도 보게 여기를 떠나 유대로 가소서
(요7:4)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면서 묻혀서 일하는 사람이 없나니 이 일을 행하려 하거든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소서 하니
(요7:5) 이는 그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
(요7: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 때는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거니와 너희 때는 늘 준비되어 있느니라
(요7:7)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지 못하되 나를 미워하나니 이는 내가 세상의 행사를 악하다 증거함이라
아무리 하나님의 아들이라도 때가 되기 전에는 가정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본문 성경이 증명한다. 동생들이 예수를 보고 “스스로 나타나기를 구하는 자”라는 말은 비평적인 한마디였다. “자신을 세상에 나타내지 않고 왜 숨기고 있느냐”라는 이런 말도 그 중의 하나일 것이다. 이는 형제들이라도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상식적으로 볼 때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매일같이 손에 장기를 들고 목수 일을 하던 것을 보던 동생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다”, “세상의 구주라” 하는 이 말을 들을 적에 마땅히 비평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말세의 종들도 멸시를 받고 미움을 받고 종 되었던 자가 일어남으로 열왕이 그 앞에 절한다고 한 것도 시련 중에 하나라고 말한 것이다(사49:7). 또는 원통한 사정을 당하는 야곱이 여호와를 앙망한다는 말도 시련 중에 하나라고 할 것이다(사40:27). 초인간적인 하나님의 역사는 인간의 생각으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야곱의 열한 형제들이 요셉이 어떻게 될 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를 박해한 사실도 사명자의 시련일 것이다. 다윗이 장인이 되는 사울에게 미움을 받고 쫓겨 다닌 것도 다윗이 만왕의 왕조가 된다는 것을 몰랐던 것이다.
하나님은 완전한 신이시니 인간이 기대하고 존경하는 사람은 들어 쓰지를 않기 때문에 인간이 흠모할 만한 사실이 없다고 이사야 선지는 53:2에 말한 것이다. 주님께서 이와 같은 가정 시련을 거친 것은 그와 같이 왕권을 가질 사명자에게 주는 교훈의 하나가 될 것이다. 때가 되기 전에는 예수님도 완전한 사람의 하나로서 인정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 합당한 진리가 된다. 사람에게 인정을 받지 못한 것이 없었더라면 이것은 완전한 구주의 자격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위대한 역사를 일으키는 사명자는 여러 가지의 시련을 통과시킨다는 것이 성서이기 때문이다. 주님도 받은 시련이어늘 우리는 가정적인 시련에 낙심할 것은 도저히 없는 것이다.
2. 사명자의 축복과 가정 문제 (행1:12~14)
(행1:12)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와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행1:13) 들어가 저희 유하는 다락에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행1:14)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니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기까지도 그 동생들은 믿지를 않았지만 부활 승천한 사실을 본 후에야 동생들도 깨닫고 그리스도의 가정 식구들은 전체가 다락방에 모여서 부활하신 주님이 내려보낼 성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심지어 성모 마리아까지 동참했던 것이다. 예수님이 만일 부활 승천하는 일이 없었던들 그 가정은 이와 같은 변동을 받을 수 없는 심정이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말세 사명자도 변화 승천할 시기가 올 때 그 가정은 더욱 합심하여 부르짖는 기도가 있게 될 것이다(계11:13). 자기가 남편으로 모셨던 사람이 승천하는 광경을 볼 때 아내가 놀라지 않을 수 없고, 자녀가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축복받은 종의 가정은 절대 합심하여 부르짖는 기도가 있도록 역사해 줄 것은 사실이다.
결 론
우리는 가정을 떠난 축복이 없고, 가정을 떠난 승리가 없는 것이다.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나를 위하여 부모나 처자나 전토를 버리는 자는 현세에서도 백배나 준다는 것이다(마19:29).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가정의 시련과 가정의 축복을 통과한 것은 말세에 들림 받을 종들에게 줄 약속의 표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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