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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스가랴 시련을 통과함 - 슥3:1~5, 요절: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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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  론


  하나님께서 어두운 사망에서 죽은 영들을 살리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극도로 쓴 고난의 과정을 거치게 하므로 그 십자가의 승리의 역사가 흑암을 물리치는 권세가 되어 많은 생명을 살리는 중생의 역사가 일어나므로 천하에 교회가 서게 되었고, 환난과 재앙 가운데서 그 재앙을 면하고 새 시대에 가는 데는 환난 재앙을 벗어날 수 있는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고는 살 자가 없다.

  그러므로 먼저 대표적인 종을 시련을 주어 말씀으로 완전히 승리케 하는 동시에 그 말씀으로 마귀와 싸워 승리하는 역사가 일어나서 모든 사람은 그 말씀에서 단결할 때에 원수의 세력을 이기고 새 시대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의 승리 역사라는 것은 일반에게 오는 것이 아니고 말씀으로 완전히 승리한 종이 전하는 말씀에 의하여 승리하게 된다.



  1대지 : 사단으로 대적하게 하심 (1)


(슥3:1)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언제나 하나님께서 시대적인 역사를 일으킬 때는 그 역사를 일으킬 대표적인 종이 그 인격을 이루기까지 대적을 하는 사단으로 시련기를 주고 거기에서 완전히 씌워질 종이 되도록 하는 데는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 : 충성된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한 목적이요,

  둘째 : 겸손한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한 목적이요,

  셋째 : 권세 있게 쓰기 위한 목적이다.


  하나님께서 사단을 들어 시련을 줌으로써 그 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새로운 일을 하는 데는 무조건 들어 쓰는 것이 아니고 반드시 인정을 받는 인격이 되기까지 사단으로써 괴롭혀보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큰 싸움을 할 군대를 거느리는 대장은 적군의 무서운 침투를 막을 수 있는 인격이 있어야만 될 것이다. 이 인격을 이루는 데는 원수에게 시달리는 전쟁을 통과한 자라야 많은 군대를 거느릴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기독교 종말에 흑암을 뚫고 나가는 촛대 교회의 역사를 일으키려면 자기 자체가 흑암을 뚫고 나갈 인격을 가져야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만민의 죄를 걸머지고 인간들이 죗값으로 받는 쓰라린 세상, 빈민의 노동 생활과 또는 심령 고통의 쓰라린 겟세마네, 또는 인간이 죗값으로 받는 사망의 고통을 골고다에서 십자가 사형을 친히 받은 후에 승리의 부활을 함으로써 전 세계 인류의 죽은 영들을 살리는 역사를 하므로 세계만방에 교회가 서게 되었고, 종말에 북방으로부터 환난이 올 때에 남은 자를 새 시대로 인도하는 데는 아무리 환난과 재앙이 와도 그 가운데서 남은 교회가 되도록 진리를 바로 가르치는 종이 나와야 될 것이다. 

  금일에 기독교가 세계에 대확장을 가져왔지만 이 교회가 이대로는 도저히 남은 교회가 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사단의 미혹을 이길 만한 말씀으로 가르치는 진리가 나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 교회는 예루살렘 다락방에서 시작된 오순절 교회를 도저히 찾아볼 수가 없게 된 것은 구약시대의 예루살렘 성전이 이방 세력에게 망하고 황폐화된 것같이 현 교회의 영적 상태가 마귀 흑암에 빠져 참된 교회를 다시 세우지 않는다면 재림의 주를 맞이할 수가 없을 것이다.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짓듯이 지금 교회가 새로운 역사로 개혁되지 않으면 도저히 이 상태로는 새 시대를 이룰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스가랴 선지에게 예루살렘 성전 복구를 할 때에 보여준 묵시는 기독교 종말에 촛대 교회의 역사를 보여주는 동시에 대표적인 여호수아가 사단에게 피해를 당하는 광경을 본 것은 종말에 촛대 교회를 일으키는 역사에 대표적인 종이 나올 때 당할 시련을 보여준 것이다.



  2대지 : 사단을 책망하심 (2~3)


(슥3:2)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슥3:3)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


  하나님께서 아무리 당신의 종이 그슬려 더러워진 나무같이 되어 더러운 옷을 입었지만 그 종을 책망하지 않고 사단을 책망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 하나님께서 모략적으로 사단을 들어 대적하게 했으니 종에게 책망을 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둘째 : 종이 끝까지 사단을 대적하다가 그슬려진 것이니 사람으로서 더 이상 할 수 없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그 종을 책망하지 않은 것이다.


  사람의 실수도 자기가 욕심에 끌려 받는 시험도 있고 마귀와 싸우기 위해서 받는 시험도 있으니 우리 주님께서 받은 시험은 진리를 가지고 싸우기 위한 시험이었다.

  이와 같이 촛대 교회를 일으키는 역사를 하려면 정욕에 끌려 시험을 받는 정도이라면 안 된다. 왜냐하면 마귀가 권세를 받고 나오는 때에 그 권세를 이기고 나가는 교회라야 남은 교회가 되기 때문이다. 적어도 촛대 교회의 사자가 되려면 정욕에 끌리지 않고 진리 하나를 목적하고 사단과 싸우는 생활이 있어야만 될 것이다.



  3대지 : 정한 관을 씌우심 (4~5)


(슥3:4)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슥3:5) 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


  하나님께서 시련기를 주는 것은 그 종을 망하게 하자는 것이 아니고 정한 관을 쓰는 왕권을 주기 위한 목적이다. 욕심에 끌려서 받는 시험은 회개할 문제가 있고, 사명을 위하여 시험을 받은 것은 왕관을 쓸 조건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대표적인 종은 하나님께서 이미 죄과를 제해버린 종이므로 아무리 사단이 대적해도 마음에 사단이 들어와 역사하지 못하고 겉만 그슬려졌으므로 사람이 볼 때는 누명을 쓴 것 같으나 하나님은 그 종에게 대하여 회개하라는 말이 없고 아름다운 옷을 입히라고 하는 동시에 왕관까지 씌우게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은 물과 피로 임한 몸이므로 그 몸에 죄가 없는 몸이시다. 그러나 여기의 종은 죄과를 제하였다는 것은 완전 개조를 시킨 몸이라는 뜻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여호수아를 예수로 본다는 것은 잘못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죄과를 제하였다고 하면 그 자체가 완전하지 못한 사람이란 뜻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므로 이 여호수아는 말세에 촛대 교회를 일으키는 대표적인 종으로 보아야 되는 것이다.



  결  론


  사단을 들어 쓰는 이도 하나님이요, 종을 들어 쓰는 이도 하나님이시니, 우리는 사단이 아무리 대적한다 하여도 절대적으로 택한 종에게 유익이 되도록 하시는 하나님이란 것을 배워야 할 것이다. 한때는 괴로운 것 같으나 그 시련을 벗어나고 뜻밖에 영광스러운 일이 올 때 더욱 감사하게 될 것이다.



70년 11월호 <장년 공과편 - 촛대 교회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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