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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궁창 밑의 역사와 궁창 위의 역사 - 겔1:22~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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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하나님께서 바벨론 포로의 한 사람인 에스겔에게 하나님의 역사가 어떠하다는 것을 보여줄 때에 궁창 밑의 역사와 궁창 위의 역사를 보여주셨다. 사람은 누구나 다 궁창 밑의 역사가 무엇이며 궁창 위의 역사가 무엇인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창1:6~8을 보면 “물 가운데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궁창을 만드사 궁창 아래의 물과 궁창 위의 물을 나뉘게 하시매 그대로 된지라, 하나님이 궁창을 하늘이라고 정하시었다”고 하였다.

  그러므로 궁창 위의 역사와 궁창 밑의 역사가 어떻다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다.



  1. 궁창 밑의 역사 (22~26)


(겔1:22) 그 생물의 머리 위에는 수정 같은 궁창의 형상이 펴 있어 보기에 심히 두려우며

(겔1:23) 그 궁창 밑에 생물들의 날개가 서로 향하여 펴 있는데 이 생물은 두 날개로 몸을 가리웠고 저 생물도 두 날개로 몸을 가리웠으며

(겔1:24) 생물들이 행할 때에 내가 그 날개 소리를 들은즉 많은 물 소리와도 같으며 전능자의 음성과도 같으며 떠드는 소리 곧 군대의 소리와도 같더니 그 생물이 설 때에 그 날개를 드리우더라

(겔1:25)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서부터 음성이 나더라 그 생물이 설 때에 그 날개를 드리우더라

(겔1:26)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


  인간의 세계와 하나님의 나라는 궁창으로 한계가 정해졌다. 궁창 아래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요, 궁창 위에는 하나님께서 계신 세계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궁창 아래의 모든 활동은 생물을 통하여 하게 하셨다.

  본 장의 20~21절을 보면 “어디든지 신이 가려 하면 생물도 가려 하는 곳으로 가고 바퀴도 그 곁에서 들리니 이는 생물의 신이 그 바퀴 가운데 있음이라, 저들이 행하면 이들도 행하고 저들이 그치면 이들도 그치고 저들이 땅에서 들릴 때에는 이들도 그 곁에서 들리니 이는 생물의 신이 바퀴 가운데 있음이더라” 하였다. 이것을 본다면 하나님의 역사에는 반드시 생물체가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바퀴 같은 것이 돌아가는 모양이 나타난 것은 우주 안의 대자연계를 움직이는 힘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므로 우주 안에 생기가 있는 것은 생물체의 힘에 의하여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주 안의 생기라는 것은 자연히 있는 것이 아니고, 생물체의 힘이 바퀴같이 돌아가는 그 역사에서 사람이나 동물이나 모든 생물이 존재할 수 있고 자연계가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요한계시록 4장의 네 생물과 같다.

  생물체의 역사가 궁창 밑에서 날개와 같은 힘을 가지고 활동하는 것이 보여진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대자연을 움직이며 삼라만상의 되어지는 일을 움직여주는 것을 가르쳤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들의 백합화도 하나님께서 입히시고 공중에 나는 새도 하나님께서 기르신다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직접 백합화를 입히고 새를 기른다는 것이 아니고, 생물체의 활동을 있게 해서 식물계나 동물계까지 그 움직이는 힘으로 되어지는 것이다. 오늘이라도 궁창 아래의 생물체의 역사가 없어진다면 이 세계는 아무런 활동이 있을 수가 없다. 이 활동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역사이다.



  2. 궁창 위의 역사 (26~28)


(겔1:26) 그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 보좌의 형상이 있는데 그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보좌의 형상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

(겔1:27) 내가 본즉 그 허리 이상의 모양은 단 쇠 같아서 그 속과 주위가 불 같고 그 허리 이하의 모양도 불 같아서 사면으로 광채가 나며

(겔1:28) 그 사면 광채의 모양은 비 오는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의 모양이라 내가 보고 곧 엎드리어 그 말씀하시는 자의 음성을 들으니라


  “보좌의 모양이 남보석 같고 그 위에 한 형상이 있어 사람의 모양 같더라”고 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은 사람과 같은데 남보석 같은 푸른 광채는 얼마든지 살려줄 수 있는 생명의 근본이 보좌에서부터라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허리 이상의 모양은 단 쇠와 같아서 그 속과 그 주위가 불 같고 그 허리 이하의 모양도 불 같아서 사면으로 광채가 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공의로 심판할 진노의 형편을 보여준 것이다. 그리고 구름에 있는 무지개 같은 광채가 있는 것은 불변의 언약을 뜻한 것인데 이것이 여호와의 영광의 형상이라고 한 것은 얼마든지 살려줄 수 있는 생명의 자체가 되시며, 심판하여 없이할 공의의 자체가 되시며, 불변의 언약인 진리의 자체가 되시는 것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므로 보좌 위의 역사는 영원한 영생의 생명으로, 진노의 심판으로, 불변의 약속의 말씀으로 움직이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말씀을 주시고 역사하시되 순종하면 생명의 역사를 부어주시는 신이시요, 순종치 않으면 진노의 역사를 부어주시는 신이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말씀을 순종하는 자라면 변치 않는 언약의 말씀대로 행하시는 하나님께서 푸른빛 같은 생명의 역사를 풍성하게 주시는 것이다.



  결  론


  사람이 궁창 아래의 활동만 알고 궁창 위의 활동을 모르고 있다면 동물에 가까운 생활을 하는 자라고 본다. 유물론자들이 네 생물의 활동에 의하여 되어지는 자연계를 스스로 있는 물체의 힘이라고 본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생각이다. 이것은 산에서 사는 돼지가 도토리를 주워먹으면서 이 열매가 위에서 떨어진 것을 모르고 땅에서 난 줄 알고 땅을 파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유물론자들은 궁창 위의 활동이 있어서 궁창 아래에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 우리는 궁창 위의 활동과 궁창 아래의 활동을 바로 알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할 것이다.



72년 2월호 <설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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