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도교회 - 은혜가 넘치는 교회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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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선물(엡2:8~10)
아, 내가 저 한 교회 가서 목회 하는데 아니 저 추수감사가 한 교회에서 80가마씩 나오니까 현 교회 목사님들이 와서 말짱 조사를 했댔습니다. 어떻게 돼서 연보를 냈냐고? 아 우리가 은혜 받고 감사해서 냈수다. 뭐 어떻단 말이요? 나 별 것 다 봤어요. 이웃교회 그 침례교 목사들이 와서 은근히 조사 하더래요. 어떻게 해서 연보를 그렇게 냈느냐고? 무슨 맘으로 냈냐고?
나는요 은혜가 너무 감사하고요 십자가로 너무 은혜를 받고나니 너무 감사해서 자진해 냈지 난 뭐 아무 것도 아니라고. 그러냐고..
그럼 그렇지 뭐 어떻단 말이요? 나 원 별 사람들 다봤어요. 무슨 그저 사기꾼 행동을 해서 쌀가마니나 뽑아 낸 줄 그렇게 알았던 모양이야요. 그게 아니야요. 그러니까 분명히 이것이 마지막 역사입니다. 틀림없습니다. 나는 나 자신을 보는 것보다도 자신도 그렇겠지마는 그 열매를 봐서 그렇게 봐요. 정말 그럴 수가 없거든요.
요일3:13~15 강해 중에서
우리가 형제를 사랑할 때에 생명이 온 증거이다. 동역자를 헐고 뜯으면 하나님의 종이 아니다. 형제의 약점을 자꾸 말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업에 방해자다. 어려운 일 당하고 약해서 쓰러질 때에 울면서 싸매면 진짜다. 교역자는 양떼가 아무리 잘못해도 치면 안되고 은밀한 가운데 기도하고 붙들어 줘야 한다. 양떼를 기르려면 정말 아껴야 한다. 진리를 대적하면 용납할 수 없다. 진리 바로 믿는 자는 실수 있어도 아껴서 은혜 받게 하라.
뢰자 어떤 교회 맡게 되어 목회할 때 제사 지내고 술장사하는 교인 있는데, 꼭 치고 싶은데 하나님이 치지 말라고 하므로 십자가 사랑을 강조하고 눈물겨운 심정으로 설교했더니 온 교인이 울며 통회. 담배 피우던 장로 영감까지 울고, 장로 사모님이 비웃더니 이 양반까지 통회. 술, 담배장사 하던 사람까지 통회, 좋은 교인 되는 것 체험했다.
다섯 남편 가진 사마리아 여자를 책망하지 않고, 간음한 여자까지 정죄 하지 않고 용서한 주님의 심정으로 믿는 형제가 실수가 있다 해도 눈물겨운 심정으로 권면하고 기도해야 된다.
여호와 경외하는 집에 축복(시128:1~6)
농촌에 가서 너무 농촌 사람이 무식하고 수준이 얕아서 자기는 도저히 잘 못하겠다 이런 사람이 있는데 그것도 잘못입니다. 예수님은 농촌을 찾아다니면서 아주 무식한 사람들 친근해서 친구가 됐는데 그것도 그 맘 가지면 교만한 맘이야요. 나는 수준이 높은데 저사람 수준이 얕으니 도저히 이건 안 되겠다 그런다면 예수님과는 달라요.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지만 죄인의 집을 찾아가서 거기서 주무셨고 좋은 서울에도 안 주무시고 저- 베다니 동네에 가서 나사로 집에 가서 주무셨고 이랬단 말이야. 그러니까 나는 수준이 높은데 내 교인들은 수준이 얕아서 안 된다고 한다는 그 자체도 교만입니다. 왜냐 할 때에 나의 체험이 그거야요. 내가 농촌 교회에 목회하러 갔는데 정말 수준이 너무 얕거든요, 수준이 너무 얕아요. 이건 뭐 집사도 술장사 담배 장사하고 장로도 담배 먹고 집사들이란 건 말짱 다 조상의 제사는 다 지내고 뭐 탁배기 한잔씩은 거반 다 먹고 그러고 뭐 청년들이 어찌 수준이 얕고 그 뭐 성경을 제대로 보는 사람이 많은 것 같지를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거기에서 밤을 세워가면서 그들의 영을 위해서 기도할 때에 강단에서 설교하면 아무리 무식한 할머니라도 글을 못 보는 할머니라도 훌쩍훌쩍 울면서 회개하고 오히려 성경을 보는 할머니보다도 더 교회를 충성되이 받들더라 그말입니다.
그러니까 교역자들도 요즘 내가 그런 말 귀에 많이 듣거든요. 전도사들이 회개할 문제입니다. 너무 수준이 얕아서 그래서 난 거기서 못하겠다, 그건 예수님보다도 더 높은 생각이야요. 예수님 사마리아 여인 남편 다섯을 데리고 사는 농촌 여자를 만났어도 그 한 시간, 두 시간을 소비하면서 그럴 때에 그걸 보라구요. 우리 목자의 심정이라는 건 아무리 무식하고 아무리 그런 사람이라도 감동을 줄 수 있는 그런 인격을 가져야지. 나는 말세 비밀을 배운 사람인데 저거 뭐 아이구! 너무 수준이 얕아서 도저히 상대가 안 된다 그러면 이건 예수님과는 좀 다른 사람이야요. 알아요? 예?
예수님 날 때도 무식한 농촌 여자한테서 났소? 고등학교 대학생 몸에 났소? 예? 아주, 대학교 대학생 가말리엘 학부를 나온 여자 몸에 났지요? 예? 농촌에서 목수와 결혼한 여자면 무식한 여자겠소? 학급이 높은 여자겠소? 그걸 보라구요. 그게 다 우리가 본다면 우리가 좀 더 반성할 문제들이야요. 또 어떤 사람은 농촌에 가면 할 일이 없어서 난 거기서 그저 잠만 잔다고. 그것도 내가 볼 때는 영이 맞질 않아요. 농촌에 조용한 곳에 가면 아- 하나님이 나 성경 수준이 얕으니까 성경 많이 보라고 갖다 놨구나, 내가 너무 기도가 부족하니 기도하라고. 아이고 하나님 감사합니다.
자, 밧모섬으로 간 사도 요한이가 수지가 맞았소? 안 맞았소? 그러면 기도할 기회를 주고 성경 볼 기회를 주는데 그것을 잃어 놓고 잠만 잔다는 그 교역자가 그게 무슨 변화성도가 되겠느냐 그말야요. 그 농촌 교회에 가서 잠자는 여자나 남자나 그 사람이 수준이 높은 사람이야요? 나는 우예 성경 볼라고 농촌을 찾아가 봤습니다. 우예 성경 볼라고. 부산을 떠나서 저 농촌 교회를 찾아갈 때에 성경 볼라고 우예 가봤어요.
전부 아직까지 내 귀에 들리는 소리는 당신네들은 그 참 옳은 것 같이 말하지만 내 마음은 조금 괴로운 것이 있더라 그말이야요. 그렇게 말하면 안 됩니다. 그렇게 되게 되면 그 교역자가 수준이 올라가질 않아요. 그렇지 않소? 예? 무식한 사람을 감화 못주는 사람이 유식한 사람을 감화를 줘요? 그렇소? 안 그렇소? 무식한 사람 감화 못주는 사람이 어떻게 유식한 사람을 감화를 주겠느냐 그말이야요. 그건 말이 안 되지.
어제 저녁에 조는 허가는 하나님이 안 준다 그러지 않았어요? 그 허가장은 취소하시오. 우리 하나님 그런 허가장 안 줘요. 그리고 우리는 어디가나 설교할 때에 나는 수준이 높다 하고 수준 높은 설교하지 말고 그저 무식한 사람도 눈물이 뚝뚝 나오도록만 설교하십시다. 예? 그것이 옳은 신이 아니겠어요? 요즘 나 본다면 그 책자 보면요, 박사들이 자기 박사라는 자랑한 책이지 그것이 농촌의 순수한 농민들과 어린양 같은 사람을 위한 책은 아니더라 그말이야요. 평생에 농촌에서 좀 순박한 사람은 그 책을 보고 무슨 말인지 모르게 썼거든. 그러니 그게 기독교를 망치는 짓들이야요. 박사면 박사지 저 혼자 박사지 뭐 그 무슨 소용이 있느냐 말야.
그, 왜 글을 쓸 적에 아주 수준 높게 뭐 아주 뜻은 아무 것도 아닌 것 갖다가. 이게 벌써 교만이란 말이야요. 성신이 말하는 것 보면요 이 월간지 보게 되면 수준이 높은 말이야요? 보통 말이야요? 나는 지금 그게 소원이야요. 제일 무식하고 가난한 그런 사람 한 번 눈물 뚝 뚝 흘리게 설교하는 그런 영력이 있었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제일 새 시대 갈 사람이 무식하고 가난한 사람 가운데 많아요. 요즘 너무 학교에서 무신론 배우고 유물론 사상 배웠기 때문에 그놈의 것 뽑아 팽개칠라면요 참 어렵습니다. 지금 이 사회 교훈이라는 것이 하나님과는 대적입니까? 대적 아닙니까? 대적 아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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