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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론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4. 인간의 주의와 인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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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인간의 주의와 인격


1) 자본주의와 인격


인간이라는 것은 자본이 없이는 살 수 없다는 것이 일반의 상식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인격이 자본이 있으면 살고 없으면 못산다는 범위에서 국한된다는 것은 빛이 아니고 흑암이라고 본다(사5:8~14).


하나님께서 사람을 낼 때에 자본을 위하여 인생을 낸 것이 아니고 모든 만물을 인류에게 사용할 특권을 맡긴 것이니 인격이 자본을 따른다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의 창조의 원리가 아니다(마6:31~32). 인격이 자본을 지배할 수 있는 인격을 가져야 될 것인데 현실 사회가 자본주의라는 정치 아래서 남을 속이고 심지어 지도자까지도 뇌물을 받고 불의의 삯을 받고 심지어 위정적인 행동을 하여 백성의 피를 빤다는 것은 오히려 인간을 망치는 자본주의가 될 것이다(미7:3~6).


우리는 신의 축복이 자본이요, 축복 속에서 준 자본을 인간 사회의 복리를 위하여 사용한다는 것이 아니라면 자본주의의 잘못된 생각을 가진 인격은 오히려 멸망의 자식이 될 것이다(암 8:4~10).


2) 봉건주의와 인격


인생이라는 것은 동등한 권리를 가지라는 것이 대자연을 창조한 신의 거룩한 뜻이니 이 원칙을 떠나서 어떤 자를 섬겨야만 살고 섬기지 않는다면 죽는다는 봉건이라는 것은 인류사회를 발전보다도 오히려 개인적인 영리에 한 도구로 되는 불행을 가져올 것이다(사10:1~3).


우리 인생이라는 것은 조물주 하나님 외에 딴 것을 섬긴다는 것은 오히려 죄가 될 것이니 봉건주의적인 사회라 하는 것은 인생을 노예화시키는 폐단이 있게 되며 오히려 발전보다도 사람을 기계화시키는 퇴보가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사람은 사람을 섬기는 종이 된다는 것은 사람이 사람을 이용하는 죄가 되고 사람이 사람을 섬기는 우상이 되므로 망치는 세상이 될 것이다(사31:1~4).


3) 공산주의와 인격


우리는 먹기 위하여 사는 인생이 아니요, 살기 위해서 사는 인생이다. 삶이라는 자체는 생명의 원천이 되시는 하나님께 있는 것이니 오늘의 공산주의가 기독교를 짓밟고 빵으로만 산다는 주의에서 전 인류에게 하나같이 빵을 먹게 만든다는 것은 동물의 세계를 이룰 우려가 있다(계13:6~8).


공산이라는 것은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하나님의 섭리를 알고 그 축복을 받은 자가 물욕을 떠난 양심에서 가난한 자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준다는 것은 기독교 세계에도 있어야 할 일이다(행4:32~35).


그러나 하나님을 부인하고 진리를 짓밟고 남을 죽이고서 남의 것을 빼앗아서 먹자는 그 정신은 도둑의 정신이 된다. 그러므로 지금 북방에서 나오는 공산주의라는 것은 근본 사상이 사람을 동물화 시키는 사상이니 이 주의는 성경에 기록된 대로 짐승의 사상을 가지고 빵 한 조각을 위하여 움직이는 동물의 생활이 된다.


짐승을 먹이는 어떤 목장과 같이 한 사람이 먹이를 한데 모아놓고 때를 따라 먹이를 주는 식이 된다(나2:8~13). 짐승이 일만해도 아무런 삯을 받지 않고 먹기만 하면 되는 식이다.


우리는 기독교의 원리를 따라서 하나님의 축복 속에서 하나같이 먹고 즐겁게 사는 것을 새 시대라고 보는 것이다(슥9:16~17).


4) 인본주의와 인격


피조물 된 인간이 조물주를 모르고 자기밖에 없다는 것은 한 교만에 불과한 인격이니 예를 들면 뚝배기가 토기장이가 필요 없다는 식이다(사45:9). 이 사상이라는 것은 너무나 좁고 얕고 해서 자기 지식에 속은 인간이다(사47:10~11).


다시 말하자면 그릇이 좁은 데다가 많은 것을 담을 수 없는 것 같이 조가비에 불과한 두뇌에다가 대 자연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세계의 것을 담는다는 것은 바닷물을 조가비에 담으려고 하는 어리석은 생각에 불과하다. 사람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아를 찾되 자기의 인격적인 존재와 할 일을 바로 찾아서 신의 섭리를 신앙하는 인격을 부인하고 자기를 믿는다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교만이라고 보게 된다(사40:22).


5) 신비주의와 인격


신비라는 것은 신의 세계에서 움직이는 한 표적과 증거를 따라서 이것만으로 만족을 삼는 인격이니 이러한 자들은 마귀의 미혹을 벗어날 수 없는 인격이다. 왜냐하면 마귀도 얼마든지 신비가 있기 때문이다(계13:13~15).


인간이 신비를 따른다는 것은 미신적인 종교의 생활이니 신앙이라는 자체는 합법적인 진리를 믿는 것이 아니고는 신비만을 믿는다는 것은 신앙 정로가 아니고 미로에서 헤매는 인격이라고 보게 된다(마24:10~12). 예를 들면 술을 먹는 자가 맹목적으로 취하는 맛에 먹듯이 신비를 맹목적으로 따른다는 것은 마귀의 술을 먹는 행동이 될 것이다(사28:7~8).


신비를 부인할 수 없고 신비를 따르되 이것이 참 신에서 오는 것이냐 거짓 신에서 오는 것이냐는 것을 분별치 못한 신비주의는 가정을 망치고 사회를 망치는 불행을 가져오게 된다(사8:20~22).


6) 복음주의와 인격


복음이라는 것은 사람이 신을 찾는 일이 아니요, 조물주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생을 찾는 방법이다(롬1:1~7).


조물주는 목적을 위하여 천지 만물을 창조한 것이니 그 목적을 인간 자력으로서는 달성할 수 없음을 보고 신께서 어떠한 방법으로 그 목적을 달성한다는 언약의 말씀을 사람에게 기록하도록 한 것이 기독교의 성경이다(사34:16) 그러므로 복음주의라는 것은 조물주의 예정하신 뜻을 믿되 자기 주관에 붙이지 않고 신의 완전성을 믿되 완전 계약의 말씀을 그대로 읽고, 듣고, 지키는 생활이다(계1:3, 22:6).


이렇게 할 때에 신은 완전한 인격이 이루어지도록 신앙자에게 역사해서 인간의 힘을 초월하고 조물주의 축복을 영적으로 육적으로 받게 되어 영?육이 아울러 완전한 신과 동행할 수 있는 단계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을 기독교 복음주의라 하는 것이다(계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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