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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론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 인간 타락과 향상 2) 인간 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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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인간 향상


(1) 인생에 최고의 가치를 찾는 일


인생이라는 것은 어떠한 길을 가야 끝을 바로 맺느냐는 것을 바로 알고 떠나는 데서부터 가치를 찾는 생활이라고 보게 된다. 왜냐하면 가치라는 것은 끝을 바로 맺는 데만 있기 때문이다(빌3:14~16). 아무리 잠깐의 고난이 있다 하여도 목적을 위한 고난은 오히려 영광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 빛의 생활이니 빛이라는 것은 멀리 내다보는 소망을 주기 때문이다(롬8:16~1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것은 빛으로 오신 것이다(요1:6~14).

세상에 제일 최고의 가치를 이룬 생활은 그리스도께서 말구유에 탄생하셔서 빈곤의 생활에서, 박해를 받은 생활에서, 십자가의 악형을 받는 데서 완전한 인생의 가치라는 것을 다시 찾아 주는 열매를 가져오는 것이 기독교의 특성이라는 것이다. 가치는 잠깐의 고난에서 영원한 기쁨과 평화를 이루는 일밖에는 인간에게는 더 없다는 것을 깨닫는 자가 되어야만 될 것이다(계5:9~10).

그러나 인간들이 수고를 하되 영원한 것을 찾지 못하는 수고라는 것은 오히려 후회를 가져오는 슬픔이 되고 말 것이다(계18:19).


(2) 완전한 지식을 찾는 일


금일에 인간들은 과학적인 지식으로써 인간에 국한된 사회라는 것을 알고 나간다는 것은 결국에 유물론 공산당의 정치가 되고 말 것이다(단11:36~39). 왜냐 할 때 인간 과학적 지식의 최고 발달을 가져오는 데는 자동적으로 인간의 머릿속에 한계가 그것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물체를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지식도 필요 없는 것은 아니로되 그 지식을 가지고 더 높고 완전한 지식에 달성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도구가 되어야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통일된 사회가 올 것을 목적으로 두고 가르치는 것이 언약의 말씀이라는 것이다(사11:9).

지식은 인간의 두뇌로써 움직여야 할 지식도 있고(단12:4), 무소불능(無所不能)의 조물주 하나님의 영적 활동으로써 오는 일로 말미암아 이루어지는 세계를 아는 지식도 있는 것이니 우리는 과학적인 생활에서 목적을 하나님의 영원한 세계를 이루기 위한 신의 역사를 순종할 때에 이것을 초인간적인 지식의 종교라는 것이다(마13:11).

세밀히 말하자면 지구상에서 사는 생활에 최고의 과학발전은 최고의 하나님의 심판과 새 시대를 이루기까지의 한 도구에 불과한 기계다(계11:18). 그러므로 기계에 국한된 인간이 아니고 영원한 영생의 생명을 목적 둔 것을 아는 것이 지식의 향상이라는 것이다(단12:10).


(3) 기능의 향상


인생은 기능이라는 데서 발전을 가져 올 때에 최고의 미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낼 때에 사람은 기능적인 사람으로 창조하신 것이다(창1:28).

우리 사람은 초인간적인 신의 지배를 받게 되는 일은 불가피한 일이다(엡2:2). 아무리 무신론자가 신의 존재를 부인한다 하여도 그 자체가 마귀의 도구가 된 생활이라고 본다(합1:11).

하나님은 모든 선지를 통하여 예언할 때에 신의 신을 반대하는 자가 북방을 자리 잡고 나왔다가 필연코 망할 것을 심판기라 했던 것이다(단11:36). 그러므로 짐승이라고 계시록에 말했다. 마귀의 최고의 미혹은 무신론이라고 본다(계13:1~2).

심판기에 무저갱에서 나온 흑암은 이 사상이다(계9:1~2). 그러므로 마귀의 도구로 쓰이는 짐승은 육?육?육이라 말한 것은 마귀의 기능이 짐승을 통하여 최고도로 발전할 것을 말했다(계13:3~4).

우리의 생활의 기능은 다음과 같이 향상 될 수 있다. 사람이 물체에 국한된 기능을 목적하고 움직이는 생활은 향상을 가져올 수 없는 타락의 생활이다(사3:1~8). 기능의 향상이라는 것은 이 한계를 넘어서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이것을 중생의 단계라고 한다(요3:5~7).

중생을 한 자에게 초인간적인 기능이 하나님께로 부여된다(행2:38~39). 인간의 자체는 신의 기능을 받을 의무가 있고 책임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주께서 승천할 때에 너희는 성신권능을 받아서 땅 끝까지 증인이 되라고 부탁의 말씀을 하시고 그때부터 승천하신 주님께서 구름 타고 올 때까지 사람을 통하여 역사하되 세계를 통일할 수 있는 데까지 사람을 들어 쓰는 것이 기독교의 본능이라는 것이다(행1:8). 기독교는 이 본능을 상실할 때에 오히려 이방에게 밟히고 만다고 경고했던 것이다(계11:2).

신은 무소불능의 자체를 가지고 계시지만은 언제나 그 기능을 사람에게 주어서 역사하는 것을 영광으로 받으시고 기뻐하시는 것이다(요14:12~13).


(4) 종교적인 향상


종교라는 것은 원시적인 종교도 있고 종말적인 종교도 있는 것이니 종교의 근본은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는 데서부터가 시발점이 되었다(창4:4). 이것은 죄진 인간이 종말적인 종교를 이루기까지 영자적인 종교에 불과했다(히10:8~14). 그 때는 뚜렷한 의식이나 또는 법이나 언약의 말씀이 책이 없는 양심에서 움직이는데 불과한 종교다.

그러나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는 종교는 발전했고 양심이 정욕으로 흐르는 종교는 타락했던 것이다(롬1:21~23). 그러므로 기독교는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는 종교로서 흘러오는 데서 완전한 언약을 세우는 시대를 구약이라 하고, 그 언약을 열매로 끝을 맺는 종교를 신약시대라 하는 것이다(딤후1:3). 열매를 이루는 종교에도 다음과 같이 향상한다. 중생을 목적한 종교, 이것은 온 세계 인류가 사망 아래에서 죽은 영들을 살려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얻도록 하는 것을 기독교의 십자가의 도라 하는 것이다(요1:12).

그러나 온 세계 인류가 전멸되는 환난과 재앙이 올 때에 남은 종, 남은 백성으로서 활동하는 역사를 새 일의 역사라는 진리다. 이것은 양심적인 종교가 승리를 이루는 즉, 완전 결실을 이루는 지상 평화왕국을 이루는 일을 말한다(사43:19~21).

그러므로 개인적인 종교가 민족적인 종교로 발전했고, 민족적인 종교가 세계적인 종교로 발전했고, 세계적인 종교가 완전히 평화왕국으로 끝을 맺는 것이 종교의 발전이라는 것이다(사9:1~7).


(5) 도덕적인 향상


인간도덕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이 발전할 수 있다.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는 생활이 없는 자도 인간을 상대하는 도덕도 있지만 이것은 타락에 불과한 도덕사회를 이룰 수도 있다(골2:22~23). 그러나 양심에서 하나님을 상대한 도덕에서만 향상을 보게 된다. 다시 말하면 부모에서부터 자녀의 축복을 하나님을 향한 양심적인 도덕에서 받게 되는 것이다(엡6:1~4).

그러므로 가정은 도덕에만 국한된 가정의 발전이 아니고 신의 축복을 목적 두고 신앙양심에서 이루어지는 도덕적인 부부가 될 적에 여기서부터 신의 축복은 그 가정에서부터 시작되게 된다(사44:1~5). 이것이 산 믿음에서 이루어진 아브라함의 축복이라는 것이다. 도덕은 양심생활에서 필연적인 열매로 이루어지는 도덕이 있으니 이것은 신께서 인정하는 생활이 된다. 도덕을 위한 도덕이 아니고 신을 순종하는 양심에서 목적을 둔 도덕이기 때문이다(마6:1~4).

인생이라는 것은 신의 축복을 받음으로써만 영원한 가정적인 사회를 이룰 수가 있다(사49:19~23). 종교는 영혼을 목적 둔 것만이 아니고 지상에 완전한 이상적인 사회를 건설하여 신의 창조의 목적을 달성하고 미의 세계를 축복으로 받는 생활이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축복이라는 것이다(사65:21~23).

그러므로 완전한 성남 성녀로서 이루어지는 도덕이 지상에 완전한 이상적인 사회를 이루는 것으로 지상은 완전이라는 것을 이루게 된다(사60:1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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