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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고보서 시험이 올 때 인정받는 자가 되자 - 약1:12~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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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자는 시험을 참는 자라고 하신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1. 시험이 오는 동기 (12~14)


(약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약1:13)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약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시험의 동기가 어디서부터 오느냐는 것을 먼저 알아야 할 것이다. 자기가 시험에 들어가는 것이 근본이 무엇인 것을 모른다면 그 자체는 정욕에 속한 자가 될 것이다.

  시험도 옳게 인정할 조건으로 오는 시험도 있고 옳게 인정을 못 할 조건으로 오는 시험도 있으니 ‘옳게 인정을 받을 시험’은 다음과 같다.


  첫째 : 참는 마음에서 오는 것은 의를 위한 시험이니, 정욕을 참지 못해서 받는 시험과는 다르다. 하나님께서 시험을 허락할 때에 인내력을 길러서 그 종을 쓰기 위한 목적이 있으니 이것은 인정을 하기 위한 방법이다.

  둘째 : 시험을 피할 수 있지만 사명을 하기 위해서 당하는 시험이 있다. 이것은 주님께서 시험을 해보는 것보다도 열심히 일하기 위하여 싸우는 조건으로 오는 시험도 있으니 이 시험을 통하여 남을 구원해주는 일이 있으므로 인정을 받게 되는 것이다.

  셋째 :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당하는 시험이니, 말씀을 지키지 않으면 그 시험을 당하지 않을 것인데 말씀을 지키기 위해서 당하는 시험은 하나님께서 인정하는 일이니 이 세 가지 방면으로 오는 시험은 상급이 될 조건이 있다고 보게 된다.


  그러나 ‘욕심에 끌려서 받는 시험’은 다음과 같다.


  첫째 : 마음에서 정욕이 발생하므로 받는 시험인데, 이것은 마음으로 범죄하는 죄가 되므로 중심적인 개조를 받기 전에는 그 시험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둘째 : 말에 실수가 있으므로 오는 시험이니, 이것은 입을 지키는 일이 있음으로만이 물러갈 수 있는 것이다.

  셋째 : 불의를 용납하므로 오는 시험이니, 히스기야가 바벨론 사신을 용납한 죄로 큰 시험이 민족적으로 왔고 베드로가 작은 계집아이에게 말을 용납해서 거기서 공포를 가진 것으로 시험이 왔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좋게 해주든지 두렵게 해주든지 하는 그 말에 충격을 받지 않아야 될 것이다. 히스기야가 바벨론 사신의 말을 기분 좋게 받아들이므로 시험받은 일이나 베드로가 작은 계집아이 말을 두렵게 들으므로 실수한 일을 보아서 불의한 자의 말은 절대로 충격을 받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2. 스스로 속지 말아야 한다 (15~18)


(약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약1:16)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속지 말라

(약1:17)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약1:18) 그가 그 조물 중에 우리로 한 첫 열매가 되게 하시려고 자기의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느니라


  스스로 속는 자라는 것은 자기가 욕심에 끌리고도 옳은 줄 아는 것이라고 본다. 욕심이라는 것은 위로부터 오는 것만을 바라보지 않고 땅의 것을 생각할 때부터가 욕심이라는 것이다. 아무리 열심이 있다 하여도 위에서 주는 것을 받고자 하는 마음이 아니고 사람에게서 받고자 하는 마음이 있다면 이것은 열심이 있어도 스스로 속는 일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의 말씀에서 자아의 인격을 완전히 찾는 사람이 되는 데는 하나님께로부터 그 인격을 받아야 될 것이다. 신앙이라는 것은 하나님을 믿되 그 뜻을 좇아 진리의 말씀을 따라 받는 신앙에 들어가야만 열매가 있게 된다. 그러므로 믿는다 하는 자들이 자아라는 인격을 바로 찾지 못하고 무조건 믿음으로 된다는 것은 스스로 속는 일이다.

  말씀에서 바로 서는 신앙은 다음과 같이 알 수 있다.


  첫째 :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하는 자가 되어야만 될 거요,

  둘째 : 그 말씀에 떠는 자가 되어야 할 거요,

  셋째 : 그 말씀에서 체험을 받는 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자가 됨으로써 시험을 참고 나가는 자로 면류관을 받는 왕권에 도달하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결  론


  신앙생활은 시험이 없이 자랄 수 없고, 시험이 없이는 타락하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시험을 참음으로 향상이요, 시험을 참지 못하므로 타락이다. 시험이라는 것은 왜 오느냐는 것을 바로 아는 것이 빛이라면 시험을 물리치는 것도 빛으로야 될 것이다. 어떤 사람은 시험이 오되 억울하게 오면 그것 때문에 참지를 못하고 타격을 받는다는 것도 인정받지 못할 일이요, 짐짓 욕심에 끌려 시험을 받으면서 회개할 줄 모른다 해도 이것은 큰 실패를 가져올 것이다.

  이제 시험에 다음과 같이 결론적으로 말할 수 있다.

  첫째, 시험해볼 사명을 맡은 자는 마귀다. 그러므로 마귀는 얼마든지 시험을 해보는 것이 자기 할 일이므로 마음에 기회가 있으면 마음에 들어가 역사하고, 가정에 기회가 있으면 가정에 역사하고, 교회에 기회가 있으면 교회에 역사하므로 개인과 가정과 교회를 망치는 일이 있게 된다.

  이제 개인의 시험은 개인의 인격 하나를 바로 가지므로 이길 수 있고, 가정의 시험은 그 가정이 단합됨으로만이 물러가게 되고, 교회의 시험은 교회가 진리 안에서 단결하여 목숨을 바쳐 싸우는 희생적인 순교의 정신이 없이는 교회는 신령한 교회로 보존될 수가 없는 것이다.



71년 4월호 <설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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