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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일서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케 된 자 - 요일2: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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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인생이라는 것은 온전케 된 자는 하나도 없는 것이다. 아무리 한때에 세계를 움직이는 영웅으로 나타났다 하여도 그 시대 사람 중에 선구자라고 볼 수는 있지만 온전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그 사람 속에서 온전케 될 때에 인간으로서 알 수 없는 것을 알게도 되고 인간으로서 할 수 없는 것을 하게도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간 자체가 온전해지기를 기다리시는 것이 아니요, 당신의 사랑이 사람 속에서 온전케 되기를 목적하고 역사하시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속에서 온전케 되는 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우리를 위하여 화목제물된 사랑 (1~2)


(요일2: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일2: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타락한 인생을 온전케 하는 역사는 전부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 되는 진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죄를 진 인간은 하나님과 화목할 수 없지만 죗값대로 심판을 나릴 하나님께서 심판받을 인간에게 심판을 나리지 않고 화목하자는 사랑에서 먼저 인간의 죄를 위하여 그 아들을 화목제물로 세우신 것이 인간을 온전케 할 수 있는 사랑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랑은 말에 있지 않고 실천에 있는 사랑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속에서 온전하게 되는 것은 오직 화목제물 되신 예수님의 사랑을 마음에 받아들이는 자에게만 열매가 있게 되므로 그 사랑을 남에게 주기 위한 역사가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기독교의 온전한 역사라는 것이다. 만일 기독교 안에 이 사랑의 역사가 없다면 자동적으로 전부가 거짓이 되고 만다. 그리스도께서 화목제물 되신 것을 믿는 양심 속에 그 사랑을 남에게 주는 것이 없다면 그 사랑을 받은 자라고 인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



  2. 말씀을 지키고자 하는 자에게 온전케 하는 사랑 (3~5)


(요일2: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요일2:4)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요일2: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사람에게든지 온전케 하는 것이 아니고 그 말씀을 지키고자 하는 자에게 온전케 하는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 사람에게든지 무조건 온전케 된다면 공의가 없는 것이니 공의가 없는 사랑은 심판을 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화목제물 되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자 하는 자에게 역사하기 위하여 지금도 항상 대언 기도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의 완전 역사라는 것은 말씀대로 행하시는 역사이니 그 말씀대로 지키고자 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말씀대로 역사하신다. 그러므로 기도라는 것은 말씀대로 행하고자 하는 자가 말씀대로 행하지 못한 죄를 깨닫고 말씀대로 행하기 위하여 간절히 기도할 때에 말씀대로 행할 수 있는 역사가 오는 것은 화목제물 되신 예수님의 대언 기도를 통하여 오는 것이다.

  오늘에 기독교가 하나님의 사랑을 믿지만 그 사랑이 자기 속에서 온전케 되는 체험을 받은 자는 심히 적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본다. 이렇게 되는 것은 말씀대로 행하려고 하는 것이 너무나 미약한 원인이다. 누구든지 말씀대로 행하려는 것이 강한 자라면 그 사랑의 역사도 강하게 오는 것이다.



  3. 예수의 행하시는 대로 행하게 되는 일 (6)


(요일2:6)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대로 자기도 행할찌니라


  신앙이라는 것은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믿는 동시에 지금도 행하시는 그 역사대로 따라서 행하는 것을 신자의 생활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행함으로써 그 사랑을 받은 것이 아니고, 그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그 말씀대로 순종하겠다는 마음이 불타게 된다.

  그러므로 사랑의 역사가 우리 속에 와서 역사함으로써 우리는 그 역사에 따라서 행해지는 것을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케 된 자의 생활이라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나뭇가지가 진액을 받되 그 진액이 온전케 되어 열매가 맺어진 가지는 더 가꾸고, 진액을 받되 그 진액이 온전케 되지를 못한 가지는 제하여 버리는 것과 같다.

  신앙생활에도 하나님의 사랑이 온전케 된 자라야 그리스도와 같이 영광을 누릴 수 있는 왕권을 받게 된다. 하나님의 사랑은 온전한 것이니, 그 사랑이 온전케 된 자만 그 사랑 속에서 구하면서 그의 역사대로 씌워지는 인격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결  론


  사랑은 세 가지라고 볼 수 있다. 


  첫째는, 자기가 자기를 사랑하는 사람도 있으며,

  둘째는, 자기가 이익을 보기 위하여 남을 사랑하는 사랑도 있으며,

  셋째는, 자기가 남을 사랑하되 그 사랑이 온전케 되기 위하여 사랑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하나님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도 아니요, 하나님이 당신의 유익을 위하여 우리를 사랑하는 사랑도 아니요, 당신의 아들을 희생시켜 우리를 온전케 하기 위하여 사랑하는 사랑이다. 그러므로 이 사랑을 의심 없이 믿고 순종하는 사람 속에 온전케 되는 사랑인 것이다.



72년 8월호 <설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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