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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브리서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는 진리 - 히2:9~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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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하나님께서는 온전한 것을 주시되 고난을 통과한 자라야 주신다는 것이 진리의 대지가 된다. 고난이 없이 온전이 있다는 것은 공의가 아닌 미혹이 되는 것이다. 언제나 마귀란 놈은 모든 것이 고난이 없이 될 것같이 믿어지게 만들어서 미혹을 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아도 자기의 말만 들으면 하나님같이 된다는 말에 미혹을 받아 타락한 인생에게 하나님께서 온전한 것을 주고자 하실 적에 당신의 아들을 보내서 십자가에 죽게 하시는 그 고난으로 말미암아 완전한 것을 주는 법을 실천하신 것이다.

  이제 고난으로 온전케 하는 진리에 대하여 본문으로 증거한다.



  1. 고난을 당하므로 영광과 존귀가 있게 하심 (9)


(히2:9)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간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고난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것은 하나님의 큰 은혜의 법이었다. 독생자가 잠깐 동안 십자가의 고난을 받으므로 만왕의 왕이 되고 십자가로 말미암아 천국이 이루어진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법을 완성한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소원인 동시에 하나님의 의를 완성하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실천이 없이 영광을 받으시는 신이 아니요, 실천하므로 이루어지는 일을 영광으로 받으시는 것이다.



  2. 고난으로 말미암아 완전케 하심 (10~13)


(히2:10) 만물이 인하고 만물이 말미암은 자에게는 많은 아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저희 구원의 주를 고난으로 말미암아 온전케 하심이 합당하도다

(히2:11)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히2: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히2:13)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찌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많은 자녀를 얻게 되는 완전한 구원을 이루어 한 형제라 부르는 것으로 하나님은 만족을 삼으신다. 완전이라는 것은 세계 인류가 하나가 되는 일이 아니고는 완전이라는 것을 이룰 수 없다. 이날까지 여러 방면으로 활동하는 자가 있었지만 하나를 이루지 못하였고, 세계 인류를 한 형제가 되게 만드는 역사는 그리스도의 고난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3. 고난으로 말미암아 마귀를 없이하심 (14)


(히2:14)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그리스도의 고난이 없이는 사망의 권세 잡은 마귀를 없이하는 일이 있을 수 없다. 마귀의 자식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지만 이것이 오히려 마귀가 망하게 일이 된 것이다. 하나님께서 마귀를 들어 쓰시는 것은 마귀를 유익하게 하자는 것이 아니요, 마귀는 완전한 나라를 이루는 데 한 도구로 쓰는 것뿐이다.

  십자가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마귀를 없이하는 일은 다음과 같다.

  첫째 : 해방을 주는 일과,

  둘째 : 마귀를 없이하는 일을 하시므로 그리스도의 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믿으므로 그리스도의 왕국을 이룰 수 있는 사람의 수를 채우시고 다음에 마귀를 심판하신다.



  4. 고난을 당하셨으므로 항상 도우시는 일을 하심 (15~18)


(히2:15)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히2:16)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히2:17)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히2:18)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십자가의 고난은 한 번 죄를 사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고 아무런 시험이 오더라도 돕는 역사가 있으므로 승리하게 하시는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은 십자가의 피로 산 백성은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으므로 무조건 항상 도와줄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남을 도와주는 것은 법이 없이는 도울 수 없지만 내 것을 내가 간수하는 일은 마땅히 할 의무이다. 이와 같이 주께서 우리를 돕는 것은 얼마든지 도울 수 있는 의무가 있으니 이것은 십자가의 고난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당신의 소유로 삼았기 때문이다.



  결  론


  고난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자기의 죗값으로 받는 고난이요, 둘째, 남을 살리기 위한 고난도 있는 것이다. 남을 살리기 위한 고난이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있는 것이요, 사람이 사람을 위해서 고난을 받았다는 조건으로 남을 살릴 수는 없다. 그러므로 의로우신 예수님의 고난으로만 완전한 것을 이루는 것이다.



71년 10월호 <설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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