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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도서 의롭다 하심을 얻게 하는 역사 - 딛3:4~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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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하나님의 완전 역사라는 것은 의롭다 함을 얻게 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역사하시되, 의로운 사람이 되도록 역사해주시는 것을 말한다. 물체에 관한 것을 중심하지 않고, 인격 하나를 완전하게 이루어놓는 것을 하나님의 완전 역사라고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완전히 역사하신 것이 아니고, 타락한 인생이라도 완전하게 만들어놓는 것을 완전 역사라고 한다. 천지만물을 창조한 역사보다도 만물을 바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 하나를 완전히 만들어놓는 것이 하나님의 제일 크고도 완전한 역사이다.

  이제 의롭다 함을 얻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역사는 무엇이냐 하는 것을 본문으로 증거한다.



  1. 중생케 하는 역사 (5상반절)


(딛3:4)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내실 때에

(딛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중생이라는 것은 인간의 자범죄를 용서해주는 역사이다. 예를 든다면 더러워진 의복을 깨끗하게 씻는 것과 같다. 이것은 인간의 도덕적 의가 필요 없이 깨끗해지는 일이 있게 되는 것이다. 도덕적인 의라는 것은 깨끗해지는 일이 아니요 깨끗하지 못한 마음이 있어도 깨끗하게 살아보려고 하는 노력이 따르는 것뿐이다. 그러나 중생이라는 것은 사람이 더러운 마음을 가지고 깨끗하게 살아보려는 것이 아니요 도덕을 초월해서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깨끗하게 살아보려고 하는 인간의 노력이 필요가 없고, 깨끗해진 사람으로서 자동적으로 생활의 열매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을 중생의 역사라고 한다.

  만일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 마음에 깨끗함을 받지 못하고 깨끗하게 살아보려는 마음만 있다면 신령한 예배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깨끗함을 받은 사람끼리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입을 열어 찬송하고 기도할 때에, 그 예배를 통하여 깨끗한 사람으로서 일할 수 있는 역사가 하나님께로부터 내리게 된다. 그러므로 십자가 의의 역사라는 것은 행하라고 하는 법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고, 행할 수 있는 사람을 만들어놓는 것을 목적한 것이다.

  만일 기독교인들이 중심에 성결을 얻고자 하는 마음이 없이 도덕적으로 사람에게 바로 보이려고 하는 것만 있다면 자동적으로 교회의 모든 일을 외식으로 행하게 되므로 하나님께서 노여워하시게 된다. 이것은 당신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보다도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것이므로 이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상대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언제나 우리는 마음이 깨끗해지는 것을 목적하고 하나님을 향하여야만 된다.



  2. 새롭게 하는 역사 (5하반절)


(딛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신은 항상 새롭게 해주는 역사를 하신다. 예를 든다면 푸른 나무 가지에는 항상 새로워지는 일이 있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기독교인이 산 믿음을 가지게 될 때에는 예배를 보든지 기도를 하든지 항상 하나님을 공경하는 일에 있어서 새로워지는 역사가 있게 되는 것이다. 겨자씨 한 알이 큰 나무를 이루듯이, 산 믿음을 가진 자는 성신의 새롭게 해주는 역사에서 큰 발전을 보게 된다. 생명이 있는 종교라는 것은 성신의 새롭게 해주는 역사가 있으므로 최후 승리의 열매를 맺게 되는 것이다.

  성신의 새롭게 하는 역사에 있어서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체험이 있게 된다.


  첫째 : 항상 마음이 새로워지는 일이 있게 된다.

  둘째 : 항상 말씀이 새로워지는 일이 있게 된다.

  셋째 : 항상 생활이 새로워지는 일이 있게 된다.


  인간이 볼 때는 뚜렷한 역사가 없다 하여도 마음이 새로워지고 말씀이 새로워지고 생활이 새로워지므로 완전 인격과 완전 지식과 완전 생활의 열매를 이루게 된다. 그러므로 복된 가정과 복된 교회와 복된 나라를 이루게 되는 열매는 인간의 힘을 초월한 성신의 새롭게 하는 역사에 있는 것이다.



  3. 풍성히 부어주는 역사 (6~7)


(딛3:6)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딛3:7)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스도께서 풍성한 은혜를 하나님께 받으셨으므로 그로 말미암아 우리도 풍성히 부어주는 역사를 받게 된다. 모든 사람이 같은 신앙을 가졌다 하더라도 풍성히 부어주는 역사를 체험한 자는 많지 못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풍성히 부어주는 역사는 자기 개인적인 신앙 하나를 위하여 노력하는 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남을 살리기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고 나서는 종들에게 그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기 위하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은혜의 분량이 각각 다른 것이다.

  강단에 서는 종이 풍성히 부어주는 역사를 받지 못한다면 그 교회를 부흥시킬 수가 전혀 없다. 왜냐하면 강단을 통하여 모든 피곤한 영들이 소성을 받기 때문이다. 오늘의 교회가 점점 더 부패되어가는 것은 강단에 서는 종들이 풍성히 부어주는 역사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풍성한 은혜를 받지 못하고 강단에 서게 될 때에, 넘쳐흐르는 역사가 없으므로 은혜를 갈망하던 양 떼들이 실망을 하고 세속으로 치우치는 일이 있게 된다.

  나의 체험으로 말한다면 강단에 서는 종이 위로부터 내려오는 것을 풍성히 받지 못할 때에 설교하는 자의 자신부터 복잡한 마음으로 생활하게 된다고 본다. 그리고 풍성히 부어주는 역사를 받으면서 강단에 서는 종이 된다면 평강에 평강을 누리는 생활에서 모든 일이 다 자유로운 열매로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라는 것은 풍성히 부어주는 역사를 받음으로만 해야 할 의무를 완전히 다하게 된다. 누구든지 풍성한 것을 받지 못한다면 자동적으로 의로운 열매를 맺지 못하므로 불행을 가져오는 부패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은혜를 풍성히 받지 못하고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것은 한 직업에 불과한 일이 되고 말 우려성이 많다. 오늘의 교회가 목사의 직업소라고 하는 말을 많이 듣게 되는 것은 풍성히 부어주는 역사를 받지 못하고 강단에 서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풍성히 부어주는 역사를 받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 생활에서 의로운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4. 선한 일을 힘쓰게 하는 역사 (8)


(딛3:8) 이 말이 미쁘도다 원컨대 네가 이 여러 것에 대하여 굳세게 말하라 이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로 하여금 조심하여 선한 일을 힘쓰게 하려 함이라 이것은 아름다우며 사람들에게 유익하니라


  하나님께서는 선한 일을 직접으로 하시는 것이 아니고, 언제나 사람을 들어서 하게 하시되 성신으로 역사하신다. 이것은 사람에게 성신의 격동을 주어서 선한 일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도록 하는 것이다. 마귀의 역사를 충만히 받은 사람은 정욕이 발생하므로 죄를 짓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는 것이요, 성신의 역사를 풍성히 받은 사람은 사랑의 불이 타므로 선한 일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자리에 들어가게 된다.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은 항상 의의 격동이 마음에 있으므로 남을 살려보겠다는 불타는 마음에서 고생을 낙으로 알고 일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선한 일을 하지 않고는 마음이 괴롭고, 선한 일을 항상 해야만 마음이 기쁘도록금 역사하는 것이 의롭다 함을 얻게 하는 역사이다.



  결  론


  의라는 것은 하나님밖에는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가 아니고는 마귀를 이길 수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서 인간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이 십자가를 믿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타락한 인생이라도 중생케 하는 동시에 생명으로 새롭게 하시고, 새롭게 하는 동시에 역사를 풍성히 부어주시고, 풍성히 부어주시는 동시에 선한 일을 힘쓰도록금 역사하신다.



72년 4월호 <설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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