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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로새서 복음의 일꾼 된 바울 - 골1:23~2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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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독교를 핍박하고 훼방하면서 나섰던 사울이 복음의 일꾼 된 바울로 나서게 된 것은 세계 인류를 죄에서 해방시키는 운동의 처음 열매가 되는 일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완전한 사람을 들어 쓰는 것이 아니고 기독교를 핍박하던 자를 회개시켜서 썼다는 것이 기독교 역사의 특징이 되는 일이라고 보게 된다. 왜냐 할 때에 기독교에 이런 역사가 없다면 세계 인류를 마귀 권세 아래서 해방시키는 역사를 도저히 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이 복음의 일꾼 된 기독교 역사의 표준적인 일이다. 

  이제 복음의 일꾼 된 바울에 대하여 그가 일꾼 된 자격은 어떠한 자격이라는 것을 본문에서 배우는 동시에 우리가 따라가야 할 선구자가 되는 바울이다.



  1. 우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했다 (24)


(골1:23) 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너희 들은바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그리하리라 이 복음은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

(골1: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복음의 자체는 그리스도인데, 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받은 고난을 기뻐했으니 복음의 일꾼도 이 사상을 가지게 된다.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던 사람이 복음을 위하여 고난 받는 것을 기뻐했다는 것은 초인간적인 역사가 아닐 수 없다. 일꾼이라는 것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수고하는 것을 기뻐하는 것이 없다면 이것은 그 목적을 완전히 바로 두지 못한 원인일 것이다. 

  금일에 어떤 종이 양 떼를 위하여 괴로움을 받는 것을 회피하려는 것은 우리의 선구자 바울과는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고 본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쓸 때 완전한 사람을 들어 쓴다는 것보다도 자기가 죄인 중에 괴수인 것을 깨달을 때 자기가 구원받은 복음을 남에게 전하기 위하여 괴로움을 당해도 기뻐한다는 것이 기독교 사랑의 본질이다. 참된 기쁨이라는 것은 이것이라고 보게 된다. 남을 구원하기 위하여 괴로움을 기뻐한다는 그 자체가 복음의 일꾼 된 마음이다. 누구든지 이러한 마음을 가졌다면 이 사람은 분명히 하나님이 들어 쓰는 종이라고 보게 된다. 

  그러므로 괴로움이 올 때에 기쁨으로 일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따라서 참과 거짓은 자동적으로 판명된다. 그러므로 미혹하는 선지라는 것은 자기에게 유익이 되면 화평을 말하고 유익이 없으면 싸움을 일으킨다는 것이 거짓 선지의 인격이라고 보게 된다(미3:5). 누구든지 일꾼 된 자격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되는 일이니 이러한 것이 없는 자라면 자동적으로 삯꾼이 될 것이다(미3:11).



  2. 하나님 말씀을 이루려고 함 (25~27)


(골1:25) 내가 교회 일군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골1:26)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골1:27)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복음이란 자체는 하나님 말씀이 이루어지는 역사이다. 하나님께서 모든 선지를 통하여 말씀한 대로 행하는 일이 복음이니 그 복음은 자체가 그리스도가 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도성인신하여 나타난 일이 없다면 하나님 말씀은 복음이 될 수 없다.

  바울은 그리스도 한 분이 나타나므로 그 목적은 유대에 국한된 것이 아니고 온 세계를 위한 복음인 것을 깨달을 때 이 복음을 모든 이방 사람들이 알게 함으로 그들이 살게 될 것을 생각할 때에 그는 전하지 않으면 화가 오리라는 것을 마음속 깊이 깨닫게 되었다. 모든 이방 사람은 다 영들이 죽었는데 내가 전하지 않으면 저들은 살길이 없다는 것을 생각할 때에 괴로움을 생각하지 않고 밤낮으로 복음을 전하는 데 전력을 두었던 것이다. 

  언제나 복음이라는 것은 인간이 알 수 없는 비밀이니 이 비밀을 모르는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서는 오히려 억울한 핍박을 받게 되는 것이다. 어느 때나 인간들은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알아보려는 것이 아니요, 모르는 것은 무조건 반대하려는 것이 타락한 인간의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복음이 전파되는 것은 인간의 방법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역사로만이 된다는 것을 그는 확신했던 것이다.

  언제나 복음의 일꾼은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이루기 위하여 역사하는 일에 종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될 것이다. 어떤 종이 아무리 열심이 있다 하여도 말씀이 이루어지는 일을 목적하지 않고 자기의 어떤 주장을 내세운다면 그 자체가 복음의 대적이 되는 자가 될 것이다. 언제나 복음은 하나님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일이니 어느 인간이 막을 자가 없다는 담력을 가지고 나서야만 될 것이다.



  3. 남을 완전케 하려는 것이다 (28~29)


(골1: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골1:29)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완전이라는 것은 복음으로만이 이루어지는 것이니, 복음을 전하는 자가 남의 단점을 말한다는 것은 그 자체가 복음과는 관계가 먼 자이다. 언제나 복음 안에서 능력으로 모든 사람이 완전케 될 것을 믿고 조금도 다른 사람의 과오를 말하지 않고 언제나 능력의 역사를 따라서 완전해진다는 것만을 믿고 힘을 다하여야만 될 것이다.

  능력이라는 것은 복음을 따라서 오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해주겠다는 것이 언약의 말씀이니 능력의 역사를 따르지 않고 자기 생각으로 남을 판단하는 자는 자동적으로 아무런 역사가 없게 되는 것이다. 

  언제나 복음의 일꾼은 능력으로써 역사하신 하나님께서 완전케 해주실 것을 믿고 남의 실수를 볼 때에 더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동시에 복음을 전해야 될 것이다. 아무리 수고한다 하여도 남을 완전케 해보려는 마음이 없다면 이것은 헛수고가 될 것이다.



  결  론


  복음의 일꾼이라는 것은 자기 자체가 복음에서 일꾼이 되어가지고 나서야 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복음이 내게 완전한 체험이 없다는 사람은 그 복음과는 상관이 없는 인격이니 복음을 전할 자격을 가진 자라고 볼 수가 없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복음을 반대하던 자가 복음의 일꾼이 되었다는 것이 기독교 복음 운동의 표준이 되는 일이다.



70년 10월호 <설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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