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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해를 받기로 택한 그릇 - 행9:10~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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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우리는 하나님께서 모태로부터 사람을 택할 때에 주를 위하여 해를 많이 받기로 택한 그릇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복 있는 사람은 주를 위하여 해를 많이 받은 자라고 본다.

  십자가의 도를 가장 밝히 증거한 사도는 해를 많이 받은 바울이다. 바울이 십자가의 도를 밝히 증거한 편지서가 아니라면 우리는 지금 십자가의 도에 대한 변론을 완전히 할 수 없을 것이다. 사도 바울이 진리를 정확히 변론하는 은혜를 받은 것은 다른 사도보다도 십자가의 도를 증거하기 위하여 해를 많이 받았기 때문이다.

  이제 해를 많이 받기로 택한 그릇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1. 많은 성도에게 피해를 준 일 (13~14)


(행9:10) 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행9:11)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행9:12) 저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행9:13)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행9:14) 여기서도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를 결박할 권세를 대제사장들에게 받았나이다 하거늘


  바울은 누구보다도 성도들에게 피해를 많이 준 사람이다. 이것은 유대교의 지나친 열성을 바울이 가졌기 때문이다(갈1:13~16). 하나님의 택한 그릇이 되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열심과 강한 성격을 받았다고 본다. 모태로부터 강한 성격을 받은 자가 무슨 일을 하든지 강하게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유대교인으로서 누구보다도 정통을 주장하였으며 율법으로는 책망할 것이 없다고 하였다. 바울은 이와 같은 열심과 강한 성격을 가졌으므로 그리스도를 오해하고 성도들을 박해했던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알지 못해서 과오를 범하고 있는 바울에게 깨닫게 해주시기 위하여 나타나셨다(딤전1:13~14). 왜냐하면 아무리 택한 자라도 깨닫게 해줌으로만 알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믿는다 하면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수고하기 싫어하는 자라면 택함을 받은 사람이라고 볼 수 없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은 알지 못했을 때에는 실수가 있었지만 알게 될 때에는 그 즉시에 바로 서게 되는 것이다. 만일 바울이 그리스도를 알고서 성도를 해치는 일을 했다면 택한 자라고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택한 자라는 것은 언제나 양심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기 때문이다.



  2. 이방인을 위하여 택한 일 (15)


(행9:15) 주께서 가라사대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하나님께서는 예지와 예정이 계시므로 모태로부터 사람을 택하실 때에 어떻게 들어 쓴다는 작정이 있는 것이다. 사람이 무엇이나 자기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모태로부터 사람을 택하실 때에 어떠한 일을 하라는 사명을 맡겼다고 본다. 어떤 사람이 옳은 일을 한다고 해서 택하여 쓰시는 것이 아니다. 사람을 택하신 하나님께서는 예정하신 뜻대로 부르시기도 하시고, 은혜를 주시기도 하시고, 들어 쓰시기도 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가 무엇을 스스로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맡겨 준 사명을 바로 알고 그 일에 순종한다는 것 외에는 생각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가 맡은 사명을 알고도 그대로 순종치 않는다면 가장 어리석은 자라고 본다. 왜냐하면 어떠한 일을 위하여 택함을 받은 사람이 순종하는 마음이 없다는 것은 주님을 대적하는 것보다도 자기 인격을 상실하는 행동이 되기 때문이다.

  예를 든다면, 밭을 가는 쟁기를 만들 때에 도끼를 사용할 때도 있고 작은 칼을 사용할 때도 있는데 도끼를 작은 칼같이 쓰려고 한다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이와 같이 자기가 어떠한 일에 씌워진다는 것도 모르고 자기의 사명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일을 한다는 것은 자기 인격을 모르는 사람이므로 모든 일이 다 실패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3. 해를 많이 받게 되는 일 (16)


(행9:16)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해를 얼마나 받아야 할 것을 내가 그에게 보이리라 하시니

(행9:17) 아나니아가 떠나 그 집에 들어가서 그에게 안수하여 가로되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행9:18)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일어나 세례를 받고


  사도 바울은 택함을 받을 때에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해를 많이 받기로 예정된 사람이었다. 고후11:23 이하를 보면 사람으로서 참을 수 없는 피해를 많이 당한 사도였다. 바울이 이러한 피해를 당하기 전에 주님께서는 “내 이름을 위하여 많은 해를 받게 될 사람”이라는 것을 말씀하셨던 것이다. 이것을 본다면 억울한 피해를 많이 당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주는 축복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피해를 당하게 되는 것은 억울한 일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주는 축복인 줄 알고 바울과 같이 항상 기뻐해야만 될 것이다. 언제나 대표적인 종이 되는 사람은 누구보다도 피해를 당하는 일이 많이 있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그리스도를 위하여 피해를 당하는 종이 있으므로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이다.



  결  론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사람은 당신의 일을 위하여 피해를 많이 당하고도 감사하는 자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가장 사랑하는 독생자도 모든 사람을 위하여 피해를 당하는 것을 원하셨던 것이다(사53:10). 그러므로 남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은 심판의 대상자가 된다. 그리고 심판권을 가질 자에게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해를 많이 받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섭리인 것이다.



72년 5월호 <설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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