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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곤핍한 자에게 안식을 주는 여호와의 말씀 - 사28:7~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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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에게 곤핍을 오게 하는 것은 안식을 줄 때가 온 증거라고 본다. 이사야 28장은 심판기에 극도로 곤핍해질 때에 안식을 주는 역사는 무엇이라는 것을 말할 때에 여호와께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말씀을 하는 일이 있게 되므로 곤핍한 자들이 안식의 복락을 받게 되는 일이 있을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이제 곤핍을 당하는 자에게 안식을 주는 일은 무엇이냐는 것을 본문을 통하여 알 수 있다.



  1. 곤핍해지는 일 (7~10)


(사28:7) 이 유다 사람들도 포도주로 인하여 옆걸음 치며 독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며 제사장과 선지자도 독주로 인하여 옆걸음 치며 포도주에 빠지며 독주로 인하여 비틀거리며 이상을 그릇 풀며 재판할 때에 실수하나니

(사28:8) 모든 상에는 토한 것, 더러운 것이 가득하고 깨끗한 곳이 없도다

(사28:9) 그들이 이르기를 그가 뉘게 지식을 가르치며 뉘게 도를 전하여 깨닫게 하려는가 젖 떨어져 품을 떠난 자들에게 하려는가

(사28:10) 대저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되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는구나 하는도다


  심판기에 모든 심령이 곤핍해진 것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독주를 먹고 이상을 그릇 풀며 재판에 실수하는 일이 있게 되므로 그들이 서는 강단에 은혜가 나리지 않게 될 때에 그 강단은 자동적으로 속화됨으로써 모든 영들은 극도로 곤핍해질 것을 가르쳤다. 금일에 교계가 이 상태로 나간다면 도저히 새 시대를 이룰 수가 없다고 본다.

  새 시대라는 것은 아무리 하나님의 종이라도 말씀대로 심판이 내리는 것이니 하나님 말씀을 바로 해석지를 못하고 혼란에 빠져있는 이 교계를 하나님은 그냥 두고 심판할 수가 없고, 또는 소위 교회의 상부라는 기관에서 참된 종이 누구인지를 모르고 예루살렘 공회가 예수를 이단이라고 하듯이 오늘의 교회가 함부로 남을 이단이라고 정죄한다는 것은 큰 실수라고 본다.



  2.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말씀하는 일 (11~12상반절)


(사28:11) 그러므로 생소한 입술과 다른 방언으로 이 백성에게 말씀하시리라

(사28:12)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금일에 어떤 신학자들은 이 사람의 입술에 말씀이 임해서 아무런 연구가 없이 말씀의 칼, 조직신학 강의, 선지서 강의, 계시록 강의, 인간론, 성경해석법, 요한일서 강의, 새일성가,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를 계속 발행하게 되는 것을 그 자체가 이단이라고 한다는 것은 너무나 경솔한 말이라고 본다.

  내가 지금 매일같이 책자를 쓸 때에 한번이라도 내 생각을 집중시킨다면 도저히 입에서 말씀이 나오지를 않고 생각을 집중하지 않고 있어야만 입에서 말씀이 나와서 책자를 쓰게 되는 것을 보면 나 자체는 스스로 떠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성경을 택할 때에도 내 생각을 집중하면 택하여지질 않고 믿고 기도할 때에 입술에 말씀이 나오는 대로 성경이 택하여지고 제목과 서론과 대지와 결론이 스스로 나오게 되는 것을 보면 분명히 내 입술을 여호와의 신이 사용한다고 믿어진다.

  하여튼 누구든지 이 책을 하나님의 말씀인 줄 알고 자세히 읽어볼 때에 하나님은 반드시 역사할 것이다.



  3. 듣지 아니할 때에 망하게 된다 (12하반절~13)


(사28:12) 전에 그들에게 이르시기를 이것이 너희 안식이요 이것이 너희 상쾌함이니 너희는 곤비한 자에게 안식을 주라 하셨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사28:13)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되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 하사 그들로 가다가 뒤로 넘어져 부러지며 걸리며 잡히게 하시리라


  하나님께서 과거의 선지를 통하여 기록한 글을 다시 알려주는 일이 없이 그냥 심판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다. 지금 혹자는 성경을 모르는 것이 정통이라, 또는 해석할 탓이라고 말한다는 것은 큰 과오라고 본다.

  이 사람이 이사야서를 읽지도 않고 그냥 말씀이 임하는 대로 기록하고 성경을 읽어볼 때에 성경은 하나도 사람이 달리 해석을 할 것이 없이 그 본문 그대로 읽어서 완전히 변론을 할 수도 있고 확실한 지식을 얻을 수 있는 성경이다.

  그러므로 내 입술에 임한 말씀이 성경과 같다는 것보다도 성경을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 내막의 뜻이 무엇이라고 간단히 알려주는 식이다. 예를 든다면 어떤 사람이 글을 쓰고 다른 사람이 그 글을 읽어서 모를 때에 그 글은 무슨 뜻으로 기록했다는 것을 간단히 말해도 읽어보면 깨닫게 되는 것과 같이, 하나님께서 이 사람의 입을 통하여 간단히 그 내용을 깨닫도록 말씀을 나타냈다고 믿어진다.

  지금 월간지도 본문을 택할 때에 입에 말씀이 와서 택하고 또는 그 성경을 보아도 내용이 어떻게 되는 것인지를 모르나 입에 말씀이 임하는 대로 받아 기록하고 보면 그 본문 내용이 대지적으로 분명히 나타나는 것을 볼 때에 누구든지 이것을 대적하는 자는 반드시 망하리라고 본다. 왜냐하면 성신의 훼방 죄 중에도 제일 큰 죄가 되기 때문이다. 이적을 보고 반대해도 훼방이라고 하였거든 하물며 여호와의 신이 합법적 변론으로 말씀을 나리는 데도 이 진리를 대적한다면 본문대로 반드시 망하게 될 것이다.



  결  론


  앞으로 기독교는 심판의 다림줄의 진리를 그대로 믿고 싸우느냐, 강한 이방 앞에 협상을 하느냐 하는 것으로 종말을 이루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14~16절을 보면 “너희 말에 사망과 언약하였고 음부와 맹약을 하였은즉 넘치는 재앙이 유행할찌라도 우리에게 미치지 못하리니 우리는 거짓으로 우리의 피난처를 삼았고 허위 아래 우리를 숨겼음이라 하는도다. 그러므로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다. 이것은 그리스도를 가르쳤는데 머릿돌 예수로 나타날 예수를 바로 믿으려면 절대로 타협적인 노선을 걷지 말라는 것이다.



71년 6월호 <설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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