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제단과 구원 문제 - 사19:19~25 -
페이지 정보
본문
기독교의 구원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구원도 있고, 단체적인 구원도 있다. 영혼 구원은 개인적이라면, 몸의 구원은 단체적이다. 영혼을 구원할 때는 죄인을 부를 때라면, 몸을 구원할 때는 세상의 악인들을 없이할 때다. 그러므로 단체적인 구원에는 반드시 제단이 따르게 되는 것이다.
이제 제단과 구원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본문으로 증거하기로 한다.
1. 여호와를 위한 제단과 구원 문제 (19~20)
(사19:19) 그 날에 애굽 땅 중앙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이 있겠고 그 변경에는 여호와를 위하여 기둥이 있을 것이요
(사19:20) 이것이 애굽 땅에서 만군의 여호와를 위하여 표적과 증거가 되리니 이는 그들이 그 압박하는 자의 연고로 여호와께 부르짖겠고 여호와께서는 한 구원자, 보호자를 보내사 그들을 건지실 것임이라
오늘에 많은 교회가 있지만 그 단체로는 진노의 날에 몸이 구원을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쭉정이와 알곡이 섞여 있기 때문이다. 진노의 날에 단체적인 구원은 어떠한 시련이 온다 하여도 끝까지 부르짖는 자들이 합심하여 제단을 쌓게 되므로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역사가 한 제단에 임하여 그 역사로 말미암아 완전무장을 갖춘 자들이 남은 종이 되어 끝까지 부르짖는 가운데서 단체적인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한 제단을 통하여 새 시대를 이루게 하시는 것은 그 제단을 중심하여 완전한 표적과 증거를 나타내기 위한 방법이다. 그러므로 그 제단에 나리는 역사를 반대하는 자는 여호와께서 응답을 내릴 수가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역사를 대적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응답이라는 것은 개인적인 응답도 있고 단체적인 응답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종말에 몸을 구원하는 응답은 단체적으로 오는 응답이므로 여호와의 제단에 응답이 나리는 역사로만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 여호와의 제단에 나리는 역사로만 새로운 시대를 이루게 하시는 것은 심판하기 위한 방법이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심판할 때는 한 제단 중심으로 참된 종들을 깨우쳐 하나가 되는 역사가 있게 하여 단체적인 구원을 받게 하므로 그 제단을 중심한 단체에 응답을 나리시게 된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알곡만을 한곳으로 모으기 위한 방법이다. 알곡이라는 것은 진노의 날에 영과 육이 아울러 구원받는 자를 말한다. 앞으로 어느 교파나 새 시대에 들어갈 알곡된 자들은 자동적으로 한 제단을 중심하여 뭉쳐지게 될 것이다.
2. 간구와 구원 문제 (21~22)
(사19:21) 여호와께서 자기를 애굽에 알게 하시리니 그 날에 애굽인이 여호와를 알고 제물과 예물을 그에게 드리고 경배할 것이요 여호와께 서원하고 그대로 행하리라
(사19:22) 여호와께서 애굽을 치실 것이라도 치시고는 고치실 것인고로 그들이 여호와께로 돌아올 것이라 여호와께서 그 간구함을 들으시고 그를 고쳐주시리라
진노의 날에 단체적인 구원은 간구가 없이는 있을 수 없다. 영혼이 구원받는 것은 이미 중생을 받은 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것이지만, 진노의 날에 영육이 구원을 받는 것은 조금도 원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간구하는 기도 응답으로 특별 보호를 받게 되므로 구원을 받는 것이다.
단체적인 구원은 여호와께서 완전히 고쳐주는 일이 있음으로써 영육이 아울러 구원을 받게 된다. 몸의 구원이라는 것은 여호와께서 완전한 몸이 되도록 고쳐주는 일이 있으므로 죽음을 맛보지 않고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3. 축복과 구원 문제 (23~25)
(사19:23) 그 날에 애굽에서 앗수르로 통하는 대로가 있어 앗수르 사람은 애굽으로 가겠고 애굽 사람은 앗수르로 갈 것이며 애굽 사람이 앗수르 사람과 함께 경배하리라
(사19:24) 그 날에 이스라엘이 애굽과 앗수르로 더불어 셋이 세계 중에 복이 되리니
(사19:25) 이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복을 주어 가라사대 나의 백성 애굽이여, 나의 손으로 지은 앗수르여, 나의 산업 이스라엘이여, 복이 있을찌어다 하실 것임이니라
영혼이 구원받는 것은 은혜라면, 몸이 구원받는 것은 축복이 된다. 이 축복이라는 것은 지상에서 받는 축복이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말씀대로 어느 나라 민족이든지 특별히 축복을 받은 자들이 새 시대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이 축복은 단체적으로 받는 축복이다. 국경의 차별 없이 축복받은 사람들로 한 단체가 되어 새로운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다.
속죄라는 것은 영혼 구원의 역사라면, 축복이라는 것은 몸의 구원을 뜻했다. 아담이 순종치 않았으므로 저주받았던 이 땅에 제단 중심으로 복된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결 론
지금 많은 사람들은 제단에 대해서 등한해지고 개인적인 구원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세상 끝 날에 영육이 아울러 받는 구원은 단체적인 구원인 동시에 평화의 왕국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72년 7월호 <설교편>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