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od News

아름다운소식

구약설교

아름다운 소식을 예루살렘에 전하는 자여 너는 힘써 소리를 높이라

오바댜 에서의 발전과 야곱의 승리 - 옵1:1~21 -

페이지 정보

본문

  하나님께서 오바댜에게 묵시를 보여줄 적에 에서와 야곱을 두고 인간 종말에 될 일을 보여준 것이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가정에서 시작된 사상적인 투쟁은 심판기에 가서 완전히 끝을 맺는다는 것으로 보여진 묵시가 오바댜의 묵시다.

  사상이라는 것은 아무리 한 복중에서 한 씨를 받아 났다 하여도 사상은 합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삭의 씨를 받은 에서와 야곱은 전체가 달랐던 것이다. 에서는 붉은 사람이요 야곱은 흰 사람이며, 에서는 털이 많은 사람이며 야곱은 털이 없이 매끌한 사람이요, 에서는 용사적이요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요, 에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등한히 아는 사람이요 야곱은 그 축복을 철저히 믿는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도저히 합할 수가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러므로 심판기에 에서적인 사상은 극도로 발달하여 강하게 될 것을 가르쳤고, 야곱적인 신앙 사상을 가진 자는 극도로 미약할 것을 가르쳤다. 이렇게 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에서의 발전 (3~4)


(옵1:1) 오바댜의 묵시라 주 여호와께서 에돔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니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소식을 들었나니 곧 사자가 열국 중에 보내심을 받고 이르기를 너희는 일어날찌어다 우리가 일어나서 그로 더불어 싸우자 하는 것이니라

(옵1: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너를 열국 중에 미약하게 하였으므로 네가 크게 멸시를 받느니라

(옵1:3) 바위 틈에 거하며 높은 곳에 사는 자여 네가 중심에 이르기를 누가 능히 나를 땅에 끌어내리겠느냐 하니 너의 중심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옵1:4) 네가 독수리처럼 높이 오르며 별 사이에 깃들일찌라도 내가 거기서 너를 끌어내리리라 나 여호와가 말하였느니라


  에서적인 사상은 심판이 오고 새 시대가 온다는 것을 믿지 않고 심판기에 극도로 물질 향락을 일삼고 튼튼한 기반을 세우고 높이 집을 짓고 영구히 세상 향락을 누려보자는 것인데, 하나님 말씀을 중심하지 않고 세상 향락을 중심하여 거기에 전심전력을 쓰므로 극도로 발전을 보아 별 세계까지 올라가는 일이 있을 것을 가르쳤다.

  금일에 과학 문명을 성경보다도 더 존중히 아는 세력이 우주 세계를 침범하는 것은 심판받을 에서적인 발전이라는 것을 가르쳤다. 금일에 과학이 발전됨에 따라서 이때는 심판기라는 것을 분명히 알 수 있다. 모든 선지는 하나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멸시하는 세력을 극도로 강하게 하는 것은 심판기라고 가르친 것이다.

  하나님은 심판하기 위해서는 악자나 선자나 다 하나같이 자유롭게 활동하도록 하시므로 악자의 세력이 다수인 동시에 극도로 물질문명으로 발달돼 별 세계까지 올라가는 것이 심판기의 징조라는 것이다.



  2. 인간 지혜와 지각이 있는 자를 없이하는 심판이 오므로 에서가 망함 (5~9)


(옵1:5) 혹시 도적이 네게 이르렀으며 강도가 밤중에 네게 이르렀을찌라도 그 마음에 만족하게 취하면 그치지 아니하였겠느냐 혹시 포도를 따는 자가 네게 이르렀을찌라도 그것을 얼마쯤 남기지 아니하였겠느냐 네가 어찌 그리 망하였는고

(옵1:6) 에서가 어찌 그리 수탐되었으며 그 감춘 보물이 어찌 그리 수탐되었는고

(옵1:7) 너와 약조한 자들이 다 너를 쫓아 변경에 이르게 하며 너와 화목하던 자들이 너를 속이고 이기며 네 식물을 먹는 자들이 네 아래 함정을 베푸니 네 마음에 지각이 없음이로다

(옵1:8)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내가 에돔에서 지혜 있는 자를 멸하며 에서의 산에서 지각 있는 자를 멸하지 아니하겠느냐

(옵1:9) 드만아 네 용사들이 놀랄 것이라 이로 인하여 에서의 산의 거민이 살륙을 당하여 다 멸절되리라


  인간 지혜와 지식이 아무리 발달했다 하여도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영적 지각이 없기 때문이다. 인간 지혜와 지식이 그 자체가 죄가 되는 것이 아니요, 인간이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오히려 하나님 말씀보다도 인간 지혜와 지식을 존중히 아는 것 때문에 하나님은 이러한 자들을 하나도 남길 수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이 아무리 지혜롭게 지각이 있게 모든 일을 한다 하여도 하나님께 대한 지각이 없는 자는 오히려 지혜와 지식으로 말미암아 영적 흑암을 가져오게 되므로 내일의 멸망을 모르고 세상 향락에 도취되어 날뛰다가 망한다는 것이다.



  3. 야곱에게 행한 포학을 인하여 망하게 됨 (10~14)


(옵1:10) 네가 네 형제 야곱에게 행한 포학을 인하여 수욕을 입고 영원히 멸절되리라

(옵1:11) 네가 멀리 섰던 날 곧 이방인이 그의 재물을 늑탈하며 외국인이 그의 성문에 들어가서 예루살렘을 얻기 위하여 제비 뽑던 날에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었느니라

(옵1:12) 네가 형제의 날 곧 그 재앙의 날에 방관할 것이 아니며 유다 자손의 패망하는 날에 기뻐할 것이 아니며 그 고난의 날에 네가 입을 크게 벌릴 것이 아니라

(옵1:13) 내 백성이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성문에 들어가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고난을 방관하지 않을 것이며 환난을 당하는 날에 네가 그 재물에 손을 대지 않을 것이며

(옵1:14) 사거리에 서서 그 도망하는 자를 막지 않을 것이며 고난의 날에 그 남은 자를 대적에게 붙이지 않을 것이니라


  에서적인 행동이라는 것은 그때그때에 자기의 이익을 위하여 형제를 해치는 일을 하는 자이다. 참된 사랑이라는 것은 형제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기독교의 사상인데, 에서적인 행동은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불리하게 되면 오히려 원수 편에 가서 하나가 되어가지고 형제를 해치는 일을 하는 행동이다.

  참된 사상이라는 것은 옳은 진리를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고 하나님 편에 서서 끝까지 싸우는 자라야 하나님의 역사가 같이하므로 승리하게 되는 것인데, 하나님의 역사를 믿지 않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으로 한 것이 심판 날에 망할 에돔의 사상이라는 것이다.



  4. 야곱의 승리 (15~18)


(옵1:15) 여호와의 만국을 벌할 날이 가까왔나니 너의 행한대로 너도 받을 것인즉 너의 행한 것이 네 머리로 돌아갈 것이라

(옵1:16) 너희가 내 성산에서 마신 것 같이 만국인이 항상 마시리니 곧 마시고 삼켜서 본래 없던 것 같이 되리라

(옵1:17) 오직 시온산에서 피할 자가 있으리니 그 산이 거룩할 것이요 야곱 족속은 자기 기업을 누릴 것이며

(옵1:18) 야곱 족속은 불이 될 것이요 요셉 족속은 불꽃이 될 것이며 에서 족속은 초개가 될 것이라 그들이 그의 위에 붙어서 그를 사를 것인즉 에서 족속에 남은 자가 없으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셨음이니라


  심판이라는 것은 야곱의 승리를 위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축복을 믿고 싸워나가던 사람에게 그 축복을 주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아주는 것을 심판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는 것은 의로운 심판이 되는 것이다.

  악자나 선자나 동등하게 권리를 주어가지고 악자가 의로운 자를 압박을 하며 해쳐도 의로운 자는 악자를 악으로 대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아줄 심판을 기다리고 끝까지 참아왔기 때문에 야곱의 족속은 불이 되고 에서의 족속은 초개가 된다고 한 것은 야곱의 족속이 에서의 족속에게 크게 멸시를 받고 쫓겨나고 억울한 일을 많이 당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야곱의 족속을 내어놓기 위하여 에서의 족속을 남은 자가 없도록 심판하겠다는 것이다.

  가장 복 있는 자는 야곱의 족속이라고 한 것은 야곱에게 약속하신 언약을 끝까지 믿고 싸워나가는 변화 성도를 뜻한 것이다.



  결  론


(옵1:19) 남방 사람은 에서의 산을 얻을 것이며 평지 사람은 블레셋을 얻을 것이요 또 그들이 에브라임의 들과 사마리아의 들을 얻을 것이며 베냐민은 길르앗을 얻을 것이며

(옵1:20) 사로잡혔던 이스라엘의 뭇 자손은 가나안 사람에게 속한 땅을 사르밧까지 얻을 것이며 예루살렘의 사로잡혔던 자 곧 스바랏에 있는 자는 남방의 성읍들을 얻을 것이니라

(옵1:21) 구원자들이 시온산에 올라와서 에서의 산을 심판하리니 나라가 여호와께 속하리라


  하나님께서 에서적인 세력을 몽땅 없이하는 것을 심판으로 가르쳤고, 야곱의 족속이 남아서 새 시대 가는 것을 기독교의 완전 구원이라고 말씀하셨다(19~21).

  우리는 완전한 것을 가졌다는 것보다도 완전케 해주시는 하나님께서 미약한 우리를 위하여 역사해주시는 하나님의 역사로 강한 대적이 초개같이 타져버리고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얻는 것이 에서의 발전과 야곱의 승리라는 것이다.



71년 2월호 <설교편>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