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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기독교 흑암과 강권 역사 - 사59:9~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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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에게 기독교 종말의 흑암이 무엇이며 강권 역사가 무엇이라는 것을 기록하도록 하신 것이 본문이다. 하나님께서 아무리 교회가 부패해서 어찌할 수 없는 자리에 들어갔다 하여도 강권 역사를 행하시고 심판을 나리시는 것은 다음과 같다.



  1. 기독교의 흑암


(사59:9) 그러므로 공평이 우리에게서 멀고 의가 우리에게 미치지 못한즉 우리가 빛을 바라나 어두움 뿐이요 밝은 것을 바라나 캄캄한 가운데 행하므로

(사59:10) 우리가 소경 같이 담을 더듬으며 눈 없는 자 같이 두루 더듬으며 낮에도 황혼때 같이 넘어지니 우리는 강장한 자 중에서도 죽은 자 같은지라

(사59:11) 우리가 곰 같이 부르짖으며 비둘기 같이 슬피 울며 공평을 바라나 없고 구원을 바라나 우리에게서 멀도다

(사59:12) 대저 우리의 허물이 주의 앞에 심히 많으며 우리의 죄가 우리를 쳐서 증거하오니 이는 우리의 허물이 우리와 함께 있음이라 우리의 죄악을 우리가 아나이다

(사59:13) 우리가 여호와를 배반하고 인정치 아니하며 우리 하나님을 좇는데서 돌이켜 포학과 패역을 말하며 거짓말을 마음에 잉태하여 발하니

(사59:14) 공평이 뒤로 물리침이 되고 의가 멀리 섰으며 성실이 거리에 엎드러지고 정직이 들어가지 못하는도다

(사59:15) 성실이 없어지므로 악을 떠나는 자가 탈취를 당하는도다 여호와께서 이를 감찰하시고 그 공평이 없은 것을 기뻐 아니하시고


  첫째 : 빛을 바라나 어두운 일 (9~10)

  교회가 아무리 애를 써도 흑암으로 들어가는 이유는 사랑이 떠나고 공평이 떠났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택한 자를 사랑하되 차별 없이 사랑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인데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을 무시하게 될 때에는 자동적으로 하나님과 대적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역사는 이러한 자들에게는 나리지 않는 것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그것을 회개하기 전에는 밝은 것을 바라나 캄캄한 가운데 행하므로 눈이 있어도 소경이 되고 빛이 있어도 그 빛과는 관계가 전혀 없는 흑암에 떨어진다.

  그러므로 사도 요한은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스스로 어두운 데 있는 자라고 말했던 것이다(요일2:9~11). 기독교는 죄인을 위하여 십자가에 죽은 사랑의 본질을 떠나고 공평을 떠나게 될 때에 십자가의 원수가 되므로 자동적으로 흑암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둘째 : 구원을 바라나 멀어지는 일 (11~13)

  구원이라는 것은 죄인을 구원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죄인을 용납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구원을 바라보면서도 죄악을 떠나는 생활이 없다면 그 생활은 구원과 멀어지는 생활이다.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은 예수를 믿는다는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다니면서도 구원을 바라본다는 것은 스스로 속는 일이라고 본다. 죄를 용납할 수 없어서 아들을 죽이신 하나님께서 어찌 거짓이 있는 자를 용납할 수가 있을 것인가! 그러므로 교회 흑암이라는 것은 구원을 바라보면서 성결의 생활을 하지 않는 것이라고 본다.


  셋째 : 불의한 자가 교권을 쥐는 일 (14~15)

  교회가 완전한 사람이 모이는 장소는 아니로되 불의한 자가 교권을 쥐게 되면 정직한 사람이 일할 수가 없게 되므로 자동적으로 교회는 흑암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초대 교회는 사도 앞에 불의한 자들이 있다 하여도 다 쓰러지는 일이 있게 되므로 신령한 교회로 세워졌던 것이다.

  그러나 심판기의 교회는 “공평이 뒤로 물리침이 되고 의가 멀리 섰으며 성실이 거리에 엎드러지고 정직이 들어가지 못하는도다”라고 한 것은 불의한 자가 권리를 쥐고 있으므로 교회가 흑암으로 떨어진다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이와 같이 될 때에 이 교회를 그냥 두고는 도저히 새 시대를 이룰 수가 없으므로 하나님은 강권 역사를 행하고야 심판을 베푸시겠다는 것이다.



  2. 하나님의 강권 역사


(사59:16) 사람이 없음을 보시며 중재자 없음을 이상히 여기셨으므로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사59:17) 의로 호심경을 삼으시며 구원을 그 머리에 써서 투구를 삼으시며 보수로 속옷을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시고

(사59:18)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대적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


  첫째 : 쓸 사람이 없으므로 강권 역사를 행하시는 일 (16)

  교회의 지도자 부패로 교회가 흑암으로 떨어질 때는 하나님은 강권 역사로써 새로운 종이 나오도록 하셔야만 된다는 것이다. 과거의 이스라엘 말기에도 예루살렘이 부패한 것은 지도자 부패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지도자들에게 임하므로 바벨론에게 먹힘을 당하게 되었으며, 예루살렘이 복구된 것은 새로운 순의 종이 하나님의 강권 역사로 나오게 하므로 된 것같이, 심판기에도 사람이 없음을 보시고 여호와 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자기의 의를 스스로 의지하고 역사한다고 하신 것은 강권 역사를 뜻한 것이다. 가장 하나님께서 진노하실 일은 지도자 부패라고 본다.


  둘째 : 구원을 베푸시며 원수를 갚는 일 (17~18)

  하나님께서 진노의 날에 강권 역사를 행하는 일에 있어서는 구원을 베푸는 일도 강하게 역사하시고 심판을 나리는 것도 강하게 역사하시므로 새로운 시대를 이루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국가에서 적군이 들어올 때에 적군을 치는 것도 강하게 치며 자기 백성을 구해주는 것도 강하게 다스리는 것과 같다.

  은혜 시대에는 원수를 갚는 때가 아니므로 원수에게 피해를 당해도 그 영혼만을 구원하는 것을 목적했지만, 원수를 갚는 날에는 친히 “구원을 그 머리에 써서 투구를 삼으시며 보수로 속옷을 삼으시며 열심을 입어 겉옷을 삼으시고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그 대적에게 분노하시며 그 원수에게 보응하시며 섬들에게 보복하실 것이라”고 하시었다. 이때에 하나님의 영광은 동방으로 나타난다고 말씀한 것은 동방 역사는 원수를 갚는 날에 일어나는 역사라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결  론


  하나님의 진노는 교회 부패로 말미암아 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회가 부패되는 것을 볼 때에 거기에 동참하지 말고 여호와만 바라보고 새로운 역사를 받아서 새로운 일꾼이 되어야만 할 것이다.



71년 10월호 <설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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