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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하나님의 선택과 영광 - 사48:9~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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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하나님께서 택한 자에게 영광을 주고자 하는 것이 하나님의 완전한 사랑이라는 것이다. 선택이라는 것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로 볼 수 있다. 모태로부터 택하는 일도 있고, 시련 가운데서 택하는 일도 있다. 첫째는 구원하기로 택한 것이니 모태로 택한 것이요, 둘째는 영광을 주기로 택한 것이니 이것은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여 종말의 영광을 누리도록 쓰는 것을 말한 것이다.

  다음과 같이 본문을 들어서 선택과 영광에 대하여 증거한다.



  1. 이름을 위하여 참으심 (9)


(사48:9)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예를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종을 들어 쓰고자 할 때에 여러 가지 실수가 있다 하여도 중심 사상이 합당한 자라면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당신의 영예를 위하여 참고 멸절하지 않으시면서 종을 기르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을 택한 것이 아니고 완전치 못한 자라도 완전한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하여 기르는 기간을 두신 것이다.



  2. 연단을 시켜보고 택하심 (10)


(사48:10)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


  하나님께서 사명을 맡기신 다음에 여러 가지 연단을 시키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의의가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나 보자는 것이요,

  둘째는, 하나님만 의지하나 보자는 것이요,

  셋째는, 완전한 인격을 주기 위한 목적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연단을 준 후에 하나님은 맹세를 세워 그를 축복하시고 그에게 준 언약의 말씀대로 지금까지 역사하시는 것이다. 아브라함에게 세운 언약은 완전한 그리스도의 왕국이 이 땅에 이루어지므로 그 약속이 성립되는 것이다. 아브라함을 연단시킨 것은 아브라함에게 허락한 축복을 받을 종들도 연단을 주고 연단 속에서 다시 택해서 왕권에 들어가도록 하는 것을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으면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오늘날 사명을 맡은 자는 많으나 연단 속에서 완전히 인정을 받고 왕권의 영광을 받는 자로 택해지는 사람은 적다. 가장 복 있는 사람은 연단을 받고 거기서 완전히 택함을 받아 영광의 반열에 드는 자이다.



  3. 연단받은 자에게 영광을 주심 (11)


(사48:11) 내가 나를 위하며 내가 나를 위하여 이를 이룰 것이라 어찌 내 이름을 욕되게 하리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연단을 시켜보시고 버리는 일은 절대 없다. 연단을 시키는 목적은 극히 사랑하기 때문에 시키는 것이니 연단을 시키는 것도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여, 영광을 주는 것도 거룩한 이름을 위하여 주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의 종 중에서 말세에 귀하게 쓰려고 택한 사람은 더 연단을 주어서 영광을 누리도록 하시는 것이다.

  예를 든다면 함께 자라는 나무 가운데서 귀하게 쓰기로 택한 나무는 찍어서 깎고 아름답게 다듬어서 귀한 위치에 쓰는 것과 같다. 사랑하는 자일수록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연단을 시키는 것은 사랑의 징계이다(계3:19). 바울 사도는 말하기를, 나를 세운 것은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내 몸에 채우기 위한 것이라고 했던 것이다(골1:24).

  주님께서 이날까지 왕권의 영광을 준비한 것은 고난의 풀무에서 택함받은 종들을 위하여 준비하고 계신 것이다. 지금도 그 영광을 받을 사람의 수를 채우기 위하여 주님은 길이 참고 계신 것이다. 가장 영광스러운 자는 고난의 풀무에서 택함받은 자이다.



  결  론


  하나님의 완전한 섭리는 고난의 풀무에서 택함받은 종들로 지상 왕국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러 가지 시련이 올 때에 이것은 내게 영광을 주기 위한 하나님의 모략인 줄 알고 오히려 감사하는 생활이 있어야 될 것이다.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고 나가는 것을 신앙 정로라는 것이다.



71년 9월호 <설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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