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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 여호와의 응답과 새 시대 - 사41:14~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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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 언제나 새로운 역사가 올 때는 홀연히 응답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역사가 증명하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새로운 역사를 일으키는 목적이 타락한 인생을 위하여 그 소원을 이루어주는 것이니 언제나 시련 가운데서 어찌할 수 없는 난관을 당하게 하고 거기서 원망하지 않고 낙심하지 않고 부르짖는 자를 통하여 새로운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성경 말씀이 세상에 기록되어질 때도 시련 가운데 기도하는 종에게 응답이 오면서 묵시의 말씀이 나타났고, 그 말씀이 이루어질 때도 시련 가운데 기도하는 종에게 응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 시련 중에서도 낙심치 않고 기도할 때, 네 씨가 이방의 객이 되어 400년 동안 압박을 당하다가 내가 그 압박 속에서 그들을 징벌하고 네 자손을 인도하여 가나안 복지에 새로운 왕국을 이루겠다고 언약을 세우셨다. 그 언약이 이루어질 때에 애굽에 내려가서 바로에게 압박을 당하는 자리에서 모세의 간곡한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을 나리어 그 민족을 강권으로 인도하여 가나안 복지에 다윗 왕국을 이루었다.

  다윗 왕국 말기에 극도로 부패할 때 시련을 받던 종들이 낙심치 않고 기도할 때에 그들에게 묵시의 말씀이 임하여 기록된 말씀이 구약 말기에도 예언대로 앗수르와 바벨론에게 무서운 압박을 받게 되었고 그 압박 속에서 낙심치 않고 기도하는 사람을 통하여 응답이 나리어 새로운 성전을 짓고 예루살렘을 복구한 것과 같이, 인간 종말의 말기에도 시련 가운데 부르짖는 종들에게 응답이 나리어 새로운 시대가 올 것을 가르친 것이 오늘 본문이다.

  이제 어떤 자에게 응답이 오느냐는 것을 성경을 통하여 말한다.

  


  1. 지렁이같이 된 야곱에게 강한 역사가 임한다 (14~16)


(사41:14) 지렁이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니라

(사41:15) 보라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를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로 겨 같게 할 것이라

(사41:16)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것을 날리겠고 회리바람이 그것을 흩어버릴 것이로되 너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로 인하여 자랑하리라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당신의 종을 강하게 들어 쓸 때는 극도로 미약해지고 멸시를 당하고 인간이 볼 때는 아무런 소망 없는 사람이 되게 하고 그러한 가운데서도 부르짖는 종에게 강한 역사가 임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는 것은 영광을 받기 위한 목적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쓸 때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다는 입장에서 인격이 극도로 무가치하게 되는 환경에 떨어뜨리는 것은 사람으로 하나님만 자랑하게 하는 방법이요, 그렇게 하므로 하나님의 마음은 만족함을 받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자체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사람이 완전하다면 하나님의 사랑은 필요가 없게 될 것이요 그 능력도 하등의 효과를 발휘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할 때에 신과 같은 인격으로 창조한 것이 아니고 지렁이같이 무능한 인생으로서 하나님의 완전한 역사를 받음으로만이 승리하게 하는 것이 사랑의 자체가 되시는 하나님의 법이라는 것이다.

  언제나 원수의 세력은 강하게 하고 인간의 힘으로써는 도저히 그 원수를 당할 수 없게 하신 후에 홀연히 나타나서 당신의 종으로 그 원수를 이기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약한 종을 쓰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므로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은 겸손과 진실이다.



  2. 가련하고 빈핍한 자의 기도를 응답하심 (17)


(사41:17) 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것을 주시기를 기뻐하시고 풍성한 것을 주심으로써 당신의 백성이 극도로 아름답게 사는 것을 원하시는 신이시다. 그러나 이러한 것을 아무에게나 준다는 것은 공의가 아니므로 언제나 완전한 것을 주고자 할 때에는 그것을 받을 수 있는 인격을 시험해보는 것이니, 지상의 축복을 받아서 새 시대의 영광을 누릴 종의 장막에 가련과 빈핍을 거치게 하는 것은 무한한 축복을 주기 위한 선한 방법이니, 아무리 궁핍하고 가련해도 물질에 끌려서 따라가지 않고 하나님만 바라보고 끝까지 자기의 사명을 다하고자 하는 자에게 새 땅의 축복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말씀을 믿나 믿지 않나를 시험해보는 것이다.

  어느 선지나 다 하나같이 남은 자가 되어서 새 시대에 가는 사람은 가난한 자라고 한 것은 인심이 악화된 사회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보려는 사람은 악당들에게 피해를 당하는 일이 있게 되므로 억울하게 물질의 손해를 보고 억울하게 사기를 당하게 되는 일도 있게 되므로 시련 가운데 기도할 수밖에 없는 난제가 온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게 하는 것은 강한 기도의 힘을 주기 위한 목적이다.

  우리나라의 성도들은 남의 나라보다도 경제 시련이 많은 것은 오히려 하나님과 가까워지는 높은 영계의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한 방법이라고 본다. 그러므로 가장 빈핍한 민족이 백의민족이요, 가장 빈핍한 사람이 기도의 사람이요, 가장 빈핍한 사람이 양심의 사람이다. 우리는 물질에 국한된 인격을 가지지 말고 하나님의 응답을 받는 인격을 가져야만 될 것이다.



  3. 새 땅의 축복 (18~20)


(사41:18) 내가 자산에 강을 열며 골짜기 가운데 샘이 나게 하며 광야로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으로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

(사41:19) 내가 광야에는 백향목과 싯딤나무와 화석류와 들 감람나무를 심고 사막에는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을 함께 두리니

(사41:20) 무리가 그것을 보고 여호와의 손이 지은 바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가 창조한 바인줄 알며 헤아리며 깨달으리라


  하나님께서 에덴동산의 축복은 무조건 주었으므로 그것을 길이 누릴 수 있는 사람이 되느냐 되지 못하느냐에 대하여 시험을 해본 것이 마귀의 시험이다. 둘째 아담 예수를 통하여 중생 받은 이스라엘이 새 시대를 축복으로 받는 것은 미리 시련을 통과시키고 시험을 해본 다음에 주는 축복이니 완전한 왕국이 된다. 만일 지금도 시험을 해보지 않고 준다면 또다시 부패가 있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시험을 해보고 응답받는 자로서 이루어지는 새 땅은 에덴동산보다도 더 완전한 왕국이 된다. 완전이라는 것은 응답으로만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응답은 시련을 통과한 자에게 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어 중생을 받은 이스라엘이 됨으로가 완전이 아니요, 이스라엘이 된 백성으로 시련 가운데 낙심하지 않고 기도함으로써 응답의 열매가 즉 새로운 시대를 성도의 나라로 이루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이것은 창조를 받은 사람만이 아니요 인정을 받은 사람으로서 이루어지는 새 시대니 하늘과 땅과 산천초목이 다 같이 기뻐할 일이다.



  결  론


  응답을 받는 사람이 누구냐 하는 것을 본문에서 깨달은 자가 조금도 이 본문을 통하여 새로운 힘을 얻지 못한다면 그야말로 영원히 지렁이 같은 인간이 될 것이로되, 이 본문을 통하여 새 힘을 얻고 용기 있게 나가는 자라면 새 타작기같이 강하게 씌워질 것이다.



70년 11월호 <설교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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