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 6. 25 육이오사변을 당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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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에 대한 성도의 감상
이 나라 반만년 역사에 가장 비참한 일을 당하게 된 일은 6월이 올 때마다 새로운 감상이 떠오릅니다. 난리가 난다는 말은 들었지만 실지에 난리를 당하고 볼 때에 그 전쟁의 비극은 무엇인 것을 직접 체험하게 될 때 앞으로 오는 대 환난이라는 것은 어떠할 것이냐 하는 것은 상상보다도 직접 맛을 보았다고 생각됩니다.
저는 이북서 6?25동란 전 1년을 앞에 놓고 월남해서 3?8선 4, 5십리를 앞에 놓고 개척 전도 사업을 해서 약 1년 동안에 교회를 두 곳이나 세우고 아래와 위 교회를 다 예배를 인도해 주느라고 분주했던 것입니다.
6?25동란이 나던 날은 일요일이었습니다. 오전에 두 교회를 다 예배 인도를 할 수가 없어서 한 교회는 오전에 보고 한 교회는 오후에 예배를 인도하게 되었습니다. 인제 경찰 소재지에 있는 교회를 오후에 예배를 인도하는 중 그날 새벽에 전쟁이 일어났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오후 예배를 보고 나서니 예배당 앞뒤로 사람이 꽉 찼고 벌판에 빈틈이 없이 사람이 차서 물 밀 듯이 내밉니다.
이것이 무슨 일이냐고 물으니 인민군이 지금 내려온다고 하면서 경찰이 민간보다 먼저 도망을 가고 국군까지도 앞서 도망을 가는 일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야말로 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경찰을 믿고 치안을 받고 있던 백성들이 경찰들이 앞서 도망을 갈 때에 그 백성들은 갈피를 잡지 못하고 다 집어던지고 농장을 버리고 산으로 들로 퍼져서 도망을 해서 살아 보겠다고 남쪽으로 물밀 듯 내려가던 그 모양은 오늘도 눈에 선합니다.
나도 소위 교역자가 되어 가지고 도망을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래도 교인들을 데리고 가느라고 하였지만 가다보니 십리 밖에 인민군이 벌써 둘러쌌습니다. 김일성 사진이 벽보에 나붙었습니다. 이북 신문이 돌고 있습니다. 어찌할 수 없이 높은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거기는 산간에 작은 동네가 있는데 거기에 가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밤에 공산당은 벌써 나를 찾아와서 손을 들라는 것입니다. 손을 드니 수족을 꽁꽁 결박을 해 놓는 것입니다.
이때는 나는 세상에 더 있을 소망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1년 전에 이북서 공산당을 없앨 계획으로 비밀 단체를 조직했던 일이 발각되어 야간도주하여 하나님의 보호로 3?8선을 무사히 넘게 된 것인데 다시 1 년 만에 공산당의 정치를 받게 되었으니 나는 앞길이 캄캄한 것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주여, 내 영혼을 받아 주시옵소서’ 하는 기도밖에는 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이상하게도 공산당은 나를 가까이 와서 조용히 말하기를 우리 마음이 이상하게 당신을 끌고 갈 마음이 도저히 없으니 우리가 이 산에서 풀어놓아 줄 테니 마음대로 하라는 것입니다. 그 동네에 노인 한 분이 와서 하는 말이 공산당이 하는 말이 “당신은 어디 가든지 죽을 사람인데 이 사람을 어디로 가나 잘 보아달라고 했다고 하면서 그 노인은 다른 곳으로 가지 말고 자기네 집에 방 한 칸을 줄 테니 어디로 가지 말고 자기네 집에 함께 있으면 자기네 친척이라고 해서 보호를 받도록 해 주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곳에서 무서운 동란을 피하게 되고 보니 하나님의 보호라는 것은 원수의 마음도 주님이 주관하고 불신자의 마음도 주님이 주관한다고 깨달았습니다.
이 나라가 되어지는 일은 성경에 비추어 보면 6?25 동란으로 지금까지 시대가 변천되는 단계로 들어왔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쟁 상태도 그 후에 세계 인류 전멸이라는 위기로 떨어졌고 정치 난제도 협상 정치를 쓰지 않고는 안 될 단계로 들어왔고, 사상 문제도 도저히 승부를 보기 어려운 단계로 들어왔고, 종교 문제도 그 혼란을 걷잡을 수 없게 되었고, 경제에 대한 빈부의 차이점도 도저히 사람으로 수습할 수가 없는 단계로 들어왔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동란이라는 것은 한 번 지나가고 만 것이 아니고 그 동란을 비롯하여 모든 문제가 악화되는 단계로 들어왔다고 봅니다. 우리나라 사람이 이러한 동란을 겪은 후에 좀 더 각성을 못하고 오히려 부패해진다는 것은 6?25동란보다도 더 비참한 일이 있을까 두렵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라도 좀 더 심각히 생각을 할 일은 어찌해서 동란 후에 이 세상은 이렇게 모든 일이 변천되어 나가느냐 하는 것을 성서에 입각해서 밝히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만일 그렇지 못하게 될 때는 이 민족의 장래는 더 큰 화근이 올 우려가 없지 않습니다.
이제 6월을 당할 때마다 항상 새로운 마음을 가다듬고 6?25를 회상하면서 민족의 장래와 국가의 장래를 생각지 않을 수 없습니다.
큰일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기도
- 지렁이 같은 야곱의 기도 -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내가 무엇이관대 이 땅에 나게 하셨나이까. 한 때는 이 땅에 난 것을 고민하여 비관할 때도 있었나이다. 왜정 36 년간 신앙생활에 쓰라린 고초를 당하던 일을 회상할 때에 인간으로서 가슴이 뭉클할 일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억울하게 먹지 못하고 나무껍질을 벗기던 생각, 자유를 잃고 말을 마음대로 못하고 목멘 소리로 울던 생각, 몸을 피하여 심산 심곡에 들어가서 나 자체를 감추어 보려고 할 때에 부모, 친척을 떠나 고독하게 떨고 있던 그 생각을 할 때에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어 주신 품안에서 생명을 보존한 그 은혜를 감사하오며 해방을 맞이하여 고향을 찾아와 자유로운 천지를 얻었다고 기뻐했더니 공산당의 정치 아래 토지, 재산 다 빼앗기고 문전 거지로 3?8선을 넘게 될 때에 너무나 뜻밖의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북한에서 순교 생활을 해보려고 결심하고 싸우던 싸움은 아무 열매 없이 남한 땅에 들어와 보니 북한에서 기대하던 남한은 너무나 한심스러웠습니다. 왜냐하면 북한의 공산당은 전쟁 준비에 미칠 듯이 날뛰고 있는데 남한 국군들은 오락만 하고 있는 것을 볼 때에 큰일 났다는 생각이 생겼습니다. 교회를 찾아가 보니 북한의 교회는 압박 속에서 눈물 흘려 기도하고 있는데 남한 교회는 아무런 걱정 없이 물질 향락으로 기울어지는 상태를 볼 때에 참으로 근심스러웠습니다.
돈 없이 지게꾼의 한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섭리만 믿고 밤을 새워 기도하던 중, 주의 명령 받아서 3?8선을 향하여 강원도 일대에 개척 전도의 문을 열어 주시던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1 년간 전도에 아름다운 교회를 세우게 되어 개척 교회 건축을 두 곳에나 하게 되어 이곳저곳 왕래하며 예배를 보던 중 1950년 6월 25일 주일입니다. 오전, 오후로 갈라 이곳에서 오전, 저곳에서 오후로 주일 예배를 인도하던 중 예배당 주위에 사람이 물밀 듯 밀려오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이것이 웬일입니까? 물어보니 3?8선에서 전쟁이 일어나 괴뢰군이 물밀 듯 내려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를 빨리 마치고 나서 보니 국군과 경찰은 앞서 도망을 갑니다.
새로 믿는 교인들을 데리고 피난을 가다보니 벌써 김일성 사진, 거리에 나 붙었고 노동당 신문이 왔다 갔다 합니다. 그래서 웬일이냐고 물어보니 서울은 함락되었고 십리밖에 괴뢰군이 집결해 있답니다. 할 수 없이 산 위의 마을을 찾아갔습니다. 그날 밤 공산당이 따라와서 손을 들라는 것입니다. 할 수 없이 손을 드니 포승줄로 수족을 결박하고 너 북한에서 온 목사로구나 합니다. 실지는 그때에 전도사 였습니다. 목사는 아니라고 했습니다. 서울에 장사꾼이라고 했습니다. 책가방에 설교집을 보고 이것은 무엇이냐고 할 때에 목사님이 하는 설교를 받아 기록한 책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비겁쟁이라도 하나님은 버리지 않고 그들의 마음에 역사해서 나를 내무서로 끌고 가지 않고 하는 말이 “당신은 내무서로 데리고 갈 마음이 도저히 없으니 우리가 풀어놓아 줄 테니 어디로 마음대로 가라”는 것입니다. 그때에 나는 이상하게 생각을 했지만 알고 보니 그 지방에 내무서에 있던 사람은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총살을 당했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들어 쓰기 위하여 공산당의 마음도 주관했다고 보게 됩니다.
눈물 흘려 기도를 하는 것보다, 그때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 것인가 하고 당황한 것뿐입니다. 나는 순교를 한다는 각오를 가지고 공산당과 싸우다가 월남을 한 사람이 이러한 광경을 지나고 보니 나는 순교를 할 만한 자격이 없다고 생각이 날 때에 북한에서 가졌던 용기를 잃고, 후회하기 시작하여 세상에 재미있는 생활을 해 볼 마음을 가지고 신학교를 졸업하고 좋은 교회를 맡아서 이전보다도 좀 새로운 생활을 해보려고 고려 신학을 가게 되어 준비 기도를 하려고 산으로 갔더니 이상한 증거가 나타났습니다.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는 광경이 나타났습니다. 눈을 떠도 똑똑히 보이는 것입니다. 못 자국은 찢어지는 소리가 들려오고 핏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며 주님의 뼈가 울리는 소리가 들려오면서 ‘나는 너를 위하여 이렇게 죽었으니 너는 한 일이 무엇이냐’ 는 것입니다. 그때에 나는 개척 교회를 여러 군데 세워 보려고 애썼지만 사실은 한 일이 없다는 것을 눈물겹게 깨닫고 그때에 기도하기를, 주여 내가 이제 무슨 일을 만나든지 조금도 불평하지 않고 무슨 일이나 참고 나가겠다는 기도를 했습니다. 그 후부터 내게는 동역자를 통하여 억울한 일을 15 년간 당해오는 시련의 길을 거쳤습니다.
하나님이여! 이것이 나의 축복인 줄 믿나이다. 이 길이 아니었던들 나는 오늘 이 일을 할 수 없는 무능한 인간이었나이다. 주여! 내가 무엇이관대 이처럼 사랑하셨나이까. 내가 중심성결을 목적 두고 기도할 때에 하늘 문을 여시고 나타나시던 주여, 당신은 나를 위하여 대언 기도를 하시는 주님이시온즉 그때에 내 마음에 불을 보내주신 은총으로 15 년간 중심에 성결과 평화를 보존케 해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
내가 언제 이것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었나이까. 빈민굴을 찾아 들어가 기도할 때에 내게 강한 생수를 내리시고 소성케 하신 주여, 내가 언제 계시록의 해석을 구한 일이 있나이까. 그러나 주께서 나같이 게으른 자식도 10 개월이나 밤을 새워 기도할 힘을 주시고 계시록의 비밀을 직접 음성으로 들려주시므로 받아 기록한 것을 비롯하여 기독교 종말관의 진리를 분명히 알게 해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내 몸은 노동자의 한 사람으로 쓰지 못할 맥 빠진 몸이었사오나 하나님께서 완전 개조를 시켜 13 년간 피곤 없이 봉사 하게 한 것을 감사합니다.
하나님이여, 나는 큰일을 만났사오니 어찌하오리까. 1964년 9월 24일에 이 산에서 큰 벼락불이 내리고 불 가운데 떨고 있는 나에게 「새 일수도원」을 지으라고 명령하신 지도 벌써 7 년이 접어드는 오늘에 큰일은 다름이 아니라 내게 새 힘을 주시고, 내 몸에 하늘 영양의 충만을 주시고, 입에 말씀을 주시고, 매일 10시간씩 수도 학과를 가르치게 하시고, 남은 시간에 아름다운 소식의 월간지를 70페이지로 정식 출판을 하도록 입에 말씀을 주신 것을 큰 일로 알고, 떨리는 마음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이 일을 시작하신 아버지여! 모든 서책을 주신 자도 하나님이시요, 오늘의 이 진리 운동을 축복하실 이도 하나님이시요, 앞으로 세계 열방을 이 진리로 깨우치게 하실 이도 하나님이시온즉 아무리 붉은 용의 세력이 강하다 하여도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내가 승리할 것을 믿고 용기 있게 나서겠나이다. 마귀를 창조하시고 들어 쓰시는 아버지여! 이 진리 운동이 필연코 승리할 것을 믿고 감사를 드리나이다.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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